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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3.23 10:21:43
  • 최종수정2020.03.23 10:21:43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문화재 중 하나인 약사여래입상은 불교를 넘어선 민족 신앙으로 예부터 서민들과 함께했다.

약사여래 신앙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주요 신앙으로 약사여래의 이름을 부르며 소원을 비는 것만으로 개인의 재난이나 나라의 재난을 구제받을 수 있다고 전해졌다.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것으로 재액이 소멸되고 질병이 낫는다고 하니 믿음이 필요했던 서민들은 곳곳에 약사여래 입상을 세우고 기도를 드렸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약사여래를 공양하고 기도하는 법회 약사도량이 열릴 정도로 전 국가적인 신앙이었다.
이렇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신앙이었던 만큼 지금도 약사여래의 모습을 돌이나 바위에 새긴 약사여래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뜬금없이 동네 한가운데 약사여래상이 서있거나 바위 어딘가에 약사여래상이 새겨져 있는 경우는 흔하다.

충주 중앙탑 공원과 충주 시내 중간쯤에서 만날 수 있는 창동리 약사여래입상도 그중 하나다.

2006년 3월 3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된 충주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은 인근 개인 소유지에 오층 석탑과 함께 서 있던 것을 광산 작업 중 발견해 197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일반적으로 약사여래입상은 손에 약합을 든 것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은 온화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띄고 있다.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추측할 수 없지만 근방에 옛 절터가 남아있어 제작 시기는 고려 후기로 추측된다.

보통 약사여래입상은 홀로 서있기 마련인데 충주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은 오층 석탑과 나란히 서있다. 창동리 오층 석탑이라고 불리는 이 석탑은 100m 정도 떨어진 민가에서 옮긴 것으로 전형적인 고려 시대 석탑의 형식을 보인다.

석탑은 일반적으로 인근에 절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 창동리 마애여래입상도 당시 있던 사찰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석탑도 신상의 대상이었으니 함께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창동리 5층 석탑은 화려하지 않지만 균형미나 세부적인 조각이 수준급이다. 충주 창동리 약사여래입상과 창동리 5층 석탑 바로 인근에는 창동리 마애여래상이 있다. 여기까지 왔다면 꼭 방문해야 할 충주의 숨겨진 명소다.
한자로 풀어보면 마애여래(磨崖如來)는 바위 벼랑을 갈아 새겨 넣은 부처다. '바위나 절벽에 새기다'라는 뜻의 마애와 '열반에 다다른 사람, 즉 부처'를 뜻하는 여래를 합친 마애여래는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약사여래상처럼 전국 방방곡곡 명산이나 강변에 새겨져 지금까지 내려온다.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바위 위에 새겨진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은 그 위치를 볼 때 강을 오가는 배들의 안녕을 비는 목적으로 보인다. 충주댐과 조정지댐이 생기며 물이 차올라 예전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인근에 금천 나루터가 있었고 번창한 곳 중 하나였다.
남한강을 따라가는 뱃사공은 창동리 마애여래상에게 안전한 항해를 바라며 배에서 내리지 않고 부처님을 향해 절을 올리고는 중앙탑을 향해 내려갔을 것이다.

큰 바위에 4m의 높이로 새겨진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은 중앙 부분이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탄금대에서 왜군과 격전을 펼치다 전사한 신립장군의 피눈물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처럼 우리 근처에는 옛사람들의 믿음을 간직한 탑, 여래입상, 마애여래상들이 남아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미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충주 중앙탑 공원을 방문하고 충주 시내로 이동한다면 소원을 담아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이 주는 환상적인 풍경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충주시SNS서포터즈 데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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