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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1.25 21:36:18
  • 최종수정2017.01.25 21:36:18

노보리베쓰 지옥계곡 지하에는 고온의 마그마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화산에너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 현재에도 활발히 분기와 온천을 뿜어내고 있다.

[충북일보]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

아무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 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여기 와서 나는 또 태어나야 한다.

- 고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中

여기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왜 북해도로 떠나고 싶었는지…. "하필 왜 더 추운 곳으로 가요· 따뜻한 곳도 많은데"주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하지만 북국으로 가면, 그곳의 설원과 겨울 자작나무 곁에 서면, 머리는 명징해지고 가슴은 따뜻해질 것 같았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고은 시인이 위 시를 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았는지 눈밭의 자작나무 곁에 서니 알 것 같았다. 곧추 자라기 위해 흰 수피의 몸에 군데군데 검은 생채기를 내며 자라는 자작나무….

북해도의 나무들은 일단 모두 흴 수밖에 없다. 온몸에 눈이 쌓여 있어 순백의 무희들처럼 우아하다. 우듬지로 갈수록 가늘고 섬세한 가지들은 하늘의 정기를 가장 먼저 맛보려 다투어 촉수를 뻗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숲의 지평선에 눈을 떨어버리고 갈 빛 겨울 전투복으로 도열한 나무들은 흐트러짐 없이 대오를 이룬 병사들처럼 비장해 보인다. 가끔 날아다니는 새가 그 침묵의 행간을 읽을 뿐이다.

시원(始原)의 이야기

여행 중 가장 추웠던 첫 날, 일명 지옥계곡이라 불리는'노보리베츠'로 북해도의 첫 발걸음을 뗐다. 회갈색과 암적색의 속살을 드러낸 산등성이와 유황냄새, 군데군데 치솟아 오르는 연기는 과연 지옥의 입구처럼 이질적이고 척박해 보인다. 한국의 온천은 차가운 물을 덥히는 것이지만 일본의 온천은 뜨거운 물을 식힌 것이라고 한다. 맑고 뜨거운 물이 뽀글뽀글 솟아오르는 간헐천에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유순히 모여 있다.

설원의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푸릇한 것이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도야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칼데라 호수로서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다. 그 둘레가 43km로 멀리 뾰족한 설산의 위용을 자랑하는 요테이산과 앞쪽으로는 둥글고 푸근한 얼굴의 작은 섬들이 둘러서 있다. 호수를 바라보며 뜨거운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니 기억할 수 없으나 내 몸 어딘가에 본능적으로 내재된 시원(始原)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온 것 같다. 서늘한 이마, 상큼한 바람, 따끈히 풀리는 몸, 문명의 모든 연을 놓아 버리고 잠시 원시의 품에 안긴 해방감이랄까. 온천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니 머리맡에 호수의 물이 파도치는 소리가 밤의 적요를 더했다.

도야 호수, 요테이 산의 생수(生水)

노천온천에서 도야호수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는 입욕객들

이른 아침, 설산을 두른 호수가 방 안을 들여다보니 그대로 그림 한 장이 창에 걸린다. 청명한 날씨 아래 도야 호수 유람선을 탔다. 커다란 갈매기들이 관광객이 던지는 새우깡을 따라 유람선을 맴돌았다. 파란 창공에 회백색 무늬의 갈매기들이 붉은 발로 그려내는 날개 짓이 눈부셨다. 양 날개로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다가 민첩한 동작으로 낚아채는 것이 고작 새우깡이라니 슬몃 웃음도 났다. 호수가 한눈에 조망되는 사이로 전망대에 올랐다. 호숫가의 언덕에는 하얀 설원에 자작나무들이 흰 모피로 몸을 감싼 북국의 여인들처럼 기품 있게 서 있고, 언덕 저편 멀리 설산의 정수리가 햇살에 빛난다. 호수와 설산, 인간이 목도하지 못한 억겁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몸을 바꾸어갔을 자연의 지체들을 가만가만 눈에 담았다. 상상으로 가늠키 어려운 압도적 시공간의 위용에 잠시 말을 잃었다.

요테이산 밑 후키다시 공원에 있는 일본 최고의 명수

삿포로로 가기 전 북해도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요테이산 밑, 후키다시로 향했다. 그곳에서 분출되는 일본 최고의 명수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샘물 근처를 안온하게 감싸는 눈꽃나무들과 그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 끝없이 시리게 펼쳐진 눈밭, 그럼에도 날씨는 포근했다. 청량음료와도 같은 기후였다. 설산의 몸속을 흘러온 달고 시원한 샘물을 마시고 나니 북국의 신화 속 인물이라도 될 것 같은 기운이 솟았다.

'러브레터'를 보내고 싶은 오타루 운하

삿포로나 오타루 도심 한복판은 온통 오랜 침묵을 베어낸 듯한 눈 더미가 쌓여 있었지만, 눈으로 인한 정체나 불편함 등은 전혀 없었다. 도로 양 쪽에 쌓아놓은 눈의 담장은 마치 눈의 지질학적 층위를 나타내듯 이전부터 켜켜이 쌓여온 눈의 이력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한 떡시루나 잘라놓은 케이크의 단면을 보는 듯도 했다. 사람들이 케이크의 토핑이 된 양 돌아다녔다. 삿포로에서 저녁 식사를 위해 눈빛과 불빛이 고즈넉이 어우러진 거리로 나섰다. 북해도의 명물인 소고기를 맛보고자 지붕에 커다란 고드름이 달린 스테이크 식당에 들어갔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답지 않게 양은 푸짐했고 맛도 있었다. 식당 주변에 커다란 마트가 있어서 현지인들과 뒤섞여 간단한 장을 보았다. 고령화 사회답게 어딜 가나 노인들이 많았고 눈을 치우는 근로자들도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오타루 운하

오타루 운하는 압도적 정경은 아니었지만 이 눈의 고장이 영화'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풍경과 눈이 아니었다면 그 사랑 이야기가 그토록 애틋하고 가슴 시리게 느껴졌을까. 운하 주변을 천천히 산책했다. 빵집, 인테리어 소품 가게, 작은 생활용품점들, 클래식한 유리 공예, 카페 등 상가 거리는 앙증맞게 아름다웠다. 그중에서 오르골 전시장은 관광과 상술의 절묘한 배합이었다. 작고 귀여운 동물들, 섬세한 건축물, 정교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돌고 움직이고 있었다. 단언컨대 그곳에 들어간 자 빈 손으로 나올 이 아무도 없으리라. 모두 마음에 드는 오르골을 들고 열심히 태엽을 감아 세상에서 가장 순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삿포로의 시계탑

삿포로 중심가에 잇는 구도청사를 찾았다. 붉은 색 외관과 푸른 지붕이 흰 눈과 어울려 복고적 정취를 자아냈다. 밤의 삿포로 번화가와 오오도리 공원을 걸었다. 공원은 2월에 있을 눈꽃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눈의 장막으로 덮여 있는 도시는 평화롭고 고요했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도 눈과 같이 푹신한 완충지대가 있어 소음과 다툼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1881년에 지어진 에펠탑과도 비슷한 삿포로의 명물, 높이 솟은 시계탑 아래 섰다. 삿포로 사람들은 이곳에서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할 것이다. 그들이 서로 만나 어깨를 나란히 눈밭의 소실점을 향해 아득히 걸어가는 풍경……. 성탄절의 엽서 같은 정경이 손바닥에 쥐어진다.

북해도의 여행자는 평생 녹지 않을 눈의 적설량을 가슴에 안고 올 것이다. 낭랑히 소리 내어 책을 읽던 어린아이에서 성숙된 단독자의 시선으로 침묵의 책장을 넘기며 사유의 도약을 이루듯이, 깊이 묵독할 수 있었던 설원의 여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의식의 밑바닥이 그지없이 맑고 환해진다.

/ 윤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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