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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SNS서포터즈 - 박연선생의 발자취를 따라서

  • 웹출고시간2018.11.25 13:41:06
  • 최종수정2018.11.25 13:41:06
충북 영동군에서는 매년 난계국악축제가 열린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 중의 한 분이신 난계 박연 선생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행사다.

난계 박연 선생은 조선 시대 때 세종대왕을 도와 음악을 정비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율관 제작을 통해 편경을 만드셨으며 조선 시대 초기의 음악을 완비하는 등 크나큰 발자국을 남기신 분이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308번지에 있는 난계 박연 선생의 생가를 다녀왔다. 고당리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가면 마을 가장 안쪽에 있다. 생가 앞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가을이라 은행잎과 열매가 땅에 떨어져 운치를 더한다. 작은 층계를 올라가면 대문이 있는데 소박하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모습이다.
난계 박연 선생은 1378년 8월 20일(고려 우왕 4년)에 지금 이 자리에서 태어났다.

총명하고 학문이 탁월했으며 어린 나이에 모친상을 당했을 때는 시묘살이를 6년이나 할 정도로 효심이 지극했다. 호랑이도 어린 박연의 시묘살이를 지켜줬다는 민담이 전해질 정도다. 조선 태종 2년에는 조정에서 효자 정려가 내려지기도 했다.

박연 선생은 어릴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는데 특히 피리를 잘 불었다고 한다. 그가 가야금을 연주할 때면 새와 짐승들이 와서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음악적 성취를 위해서는 신분이 미천한 광대에게도 배움을 청할 만큼 소탈한 성격에 음악적 열망이 가득 찬 인물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사회적 분위기로 미루어 봤을 때 음악적 재능은 관료로 나아가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박연 선생은 음악적 재능과 열망을 누그러뜨린 채 관료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 1405년(태종 5년) 늦은 나이인 만 27세에 생원시에 급제했고 1411년에는 문과에 장원으로 등과해 승승장구했다.

세종의 대군 시절에는 세자시강원 문학으로 세종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이때 박연 선생의 재능을 알아본 세종이 임금으로 즉위한 뒤 음악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는 관습도감의 제조에 박연을 임명했다.

당시 음이 불완전했던 악기를 조율할 방법을 정리하고 악보 찬집의 필요성을 상소했다. 1427년(세종 9년)에는 편경 12매를 제작해 직접 만든 12율관에 따른 정확한 음률로 연주하게 했으며 3년 후에는 미비한 율관을 수정하기도 했다.

또 조정 조회 때 사용하던 향악을 폐하고 아악 사용을 실행케 하는 등 궁중 음악과 예법을 전반적으로 개혁했다고 한다.

세종이 죽고 난 뒤에도 박연은 문종과 단종 등 세 임금을 모시며 고위직 관료의 길을 걸었던 그였지만 말년은 평탄치 못했다.

1453년 계유정난에 셋째 아들 박계우가 억울하게 참형을 당하고 역적의 아비라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세 임금에 걸쳐 봉직한 원로라는 점을 인정받아 관직을 박탈당하고 고향 영동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가 한강에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 작별인사를 나온 지인들에게 불어 준 피리 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구슬펐다고 전해진다. 낙향한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난 박연 선생의 유해는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장됐다. 영동의 초강 서원에 제향 되고 영조 43년에 문헌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박연 선생이 죽은 뒤 세조는 악학도감이 된 성임에게 '배워서 박연을 따를 수 있겠느냐' 고 물을 정도로 박연의 재능을 높이 샀다고 한다.

박연 선생 묘소는 난계사를 지나서 영동국악체험촌으로 오르다가 우리소리관 100m 전쯤에 있는 경란재 옆 공터를 따라 올라가면 찾을 수 있다. 아스팔트가 끝나는 지점부터 바닥에 넓은 돌을 깔아 놓은 길을 따라 오르면 되는데, 길가에 붉은 단풍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가을의 정취와 함께 박연 선생의 자취를 찾다 보니 생전 그가 연주했을 피리 소리와 가야금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 영동군SNS서포터즈 황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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