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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4.29 15:03:06
  • 최종수정2018.04.29 16:53:31

진천군 진천읍 소재 이상설 선생 생가 전경

[충북일보] 진천에서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위해 애를 썼던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진천 출신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 선생과 작가 포석 조명희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우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진천에 간다면 한 번쯤 이들의 흔적이 담긴 곳들을 찾아 그 뜻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역사교육 차원에서 다녀오는 것도 좋다.

흙벽돌과 진흙으로 지어진 생가

보재 이상설 생가

이상설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영어와 러시아어 법률 등을 공부하던 신지식인이었다. 문과에 급제해 관직을 지내기도 했다.

을사늑약 이후에는 러시아로 이주한 뒤 본격적으로 교포들의 교육과 항일 민족정신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헤이그 특사로 이준, 이위종 등과 함께하기로 했지만, 일본의 계략에 끝내 참석하지 못 하고 사형이 선고됐고 귀국을 단념한 채 다시 러시아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일도 있다.

진천읍에 위치한 이상설 생가는 진천 IC에서 가깝지만 길이 외진 탓에 찾아가기 애먹었던 곳이다.

이상설 선생 동상

어렵게 찾은 선생의 생가는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흙벽돌로 이뤄져 있고 그 위에 진흙으로 마무리한 초가집이다. 40여 년 전에 무너진 생가를 최근 복원, 수리한 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생가 주변에는 장독대와 옛날 흙집의 단칸방, 초가지붕 등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한편엔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바로 옆엔 숭열사가 자리한다.

올해가 이상설 선생 서거 101주년으로 벌써 100년 전 역사지만 역사 속에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듯,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뜻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숭열사 내부에는 선생의 영정이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광복군 정부에서 정통령으로도 선출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의 헤이그 특사, 13도 의군도, 권업회도, 대한 광복군 정부와 같은 실패를 거듭한 노력이 의미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천군 진천읍 소재 포석조명희문학관 전경

포석 조명희 문학관

포석 조명희 문학관은 진천군 시내 청소년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곳으로 한국의 민족 작가 조명희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진천에서 만날 수 있는 독립운동가로 이상설 선생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어떤 독립운동이던 힘들었겠지만, 양지에서 문학을 통해 일제의 탄압에 맞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일제라는 시대 상황이 아니었다면 근현대문학 발전에 일등공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일제강점기 심한 탄압으로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 조명희 선생은 우리나라 첫 망명 작가기도 하다. 나라 잃은 국민이 그렇듯, 소련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음을 강제 이주와 체포 등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석 조명희 문학관 내부 모습

심지어 머나먼 타지에서 총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조명희 선생의 가족이 떠난 강제 이주 길이 유독 험난해 보인다.

다행히 조명희 선생은 스탈린 사후 1956년 무혐의 처리됐다. 또 1991년 '탄압받는 민족의 명예에 관한 법'에서 당시 러시아에 의해 행해진 강제 이주와 처형 등이 집단학살로 인정됐다.

험난하기만 한 선생의 삶 속엔 그럼에도 왕성한 문학 활동의 기록이 남아있다. 시, 소설, 희곡, 평론, 아동문학, 번역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분야에서 문학 활동을 해 온 사실들이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는 그간 조명 받지 못하다 1988년 이후 조명희 선생에 대한 연구와 작품 출판이 허용됐다. 이후 포석 조명희 문학제가 꾸준히 진행돼 오다 2015년 이곳 진천에 조명희 문학관이 자리잡게 됐다.

이외에도 육성농민청년학교는 1914년 한인들에 의해 지어져 1937년 강제 이주 전까지 고려인들을 위한 학교로 운영됐는데 선생이 이곳에서 조선어 수업을 맡아 진행하던 기록도 있다.

진천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과 조명희 선생을 찾아 미처 모르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후손으로서 감사함을 갖는 시간이었다.

/ 진천군SNS서포터즈 배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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