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주로 감각적 이미지로 삶과 죽음 전반을 성찰하는데, 시인은 왜 시적 수사(修辭)에 집중하는 걸까· 수사적 문장에 사색적 관조와 성찰이 덧입혀져 사유가 극대화될 때 시적 울림과 공명을 낳기 때문이다. 즉 감각과 사유가 하나의 몸으로 현현할 때 시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첫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1994)부터 짙게 나타난다. 이 시집은 작은 존재들의 비애감을 감각적 이미지로 채색한 시집이다. 시인은 지층 깊은 곳에서 살아나오는 추억들을 목격하면서 죽지 않는 유년을 생각하기도 하고, 나무 뒤에 숨어 집을 바라보며 또는 집 뒤에 숨어 나무를 바라보며 슬픔을 관조하기도 한다. 연못을 바라보며 하루 내내 침묵 속에서 소멸과 폐허를 생각하고 실존적 물음에 잠기기도 한다.
유년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 두 번째 시집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1997)이다. 시인은 한밤중 물이 고인 웅덩이를 거울로 보고 그 거울 속에서 독특하게도 빵 냄새를 맡는다. 현실과 차단되어 있는 것 같지만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유년에 대한 심적 고통을 낭만적 꿈 이미지로 풀어낸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2011)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일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결곡한 회한의 감정으로 풀어낸 다섯 번째 시집이다. 이전까지 어머니와 누이의 세계에 천착하던 시인이 아버지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어머니의 세계가 회귀 가능한 공간이라면 아버지의 세계는 회귀 불가능한 공간으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아버지 상실의 아픔이 크고 상처가 깊었다는 반증이다. 「홍시」는 이 시집에 수록된 시다.
홍시 - 박형준(朴瑩浚 1966~ )
철퍼덕철퍼덕 떨어지는 밤
아버지 돌아가신 자리에
아버지처럼 누워서 듣는다
얇은 벽 너머
줄 사람도 없는디
왜 자꾸 떨어진데여
힘없는 어머니 음성
아버지처럼
거그, 하고 불러본다
죽겄어 묻는 어머니 말에
응 나 죽겄어
고개를 끄덕이던
임종 가까운데
자식 오지 않고
뻣뻣한 사지
이불 밖으로 나온 손
가슴에 얹어주던 어머니
큰방에 누워
뒤뜰 홍시처럼 가슴에
둥글게 주먹 말아 쥐고
마을 가로질러 가는
기차 소리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