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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13 14:31:03
  • 최종수정2020.02.13 14:31:03
[충북일보] 빈 겨울 숲에 싸락눈이 내린다. 얼마나 고대하던 첫눈인가? 유리 벽 앞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듯 아이처럼 눈을 반겼다. 기억의 서랍에 담긴 숱한 추억들이 눈처럼 포근히 내려온다. 나목 새로 살포시 내리는 눈발에 어느새 숲은 산길을 드러내고 내 마음은 능선을 따라 고향 집으로 향한다.

앙상한 고욤나무 가지 사이로 삭풍은 불어오고 혹한에 맺힌 처마 끝 고드름은 동장군의 사열식을 거행하는 듯 예리한 날을 세우고 있다. 이엉 위에 얹어놓은 오빠의 새 덫에는 참새 두어 마리만 기웃거릴 뿐 짧은 겨울 해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일찍 어둠을 내린다.

고적한 농가의 저녁, 가느다란 빨랫줄에 팔을 늘어뜨리고 마른 장작처럼 얼어있는 아버지의 회색 내복은 왠지 서글퍼만 보였다. 덕장에 널린 마른 명태를 그리며 유년의 눈가를 적시던 그 옛날의 단상들이 어느덧 마음의 텃밭을 다독여 준다. 나직한 굴뚝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는 어린 가슴을 감싸며 무채색 하늘로 번져갔다. 그즈음 사랑채 부엌간에 앉아 쇠죽을 쑤시던 아버지는 암울했던 세대에 태어나셔서 가난의 고리와 오대 독자라는 외롭고도 힘겨운 멍에를 짊어지셔야만 했었다. 노심초사 자식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삶의 터전을 가꾸시던 고단한 모습을 떠올릴 때면 밀물처럼 서러움이 밀려온다.

우리 집엔 늘 소(牛)를 기르던 기억이 난다. 심성이 순하고 우직한 소는 당시 일손을 대신해주며 우리의 학자금을 위해서도 큰 몫을 감당해주었다. 그러니 가난한 아버지에게 소는 한 식구이며 분신과도 같았을 게다.

겨울이면 볏짚이랑 풀과 등겨를 버무려 여물을 안치시던 아버지, 아궁이 앞에 앉아 한 손으로 왕겨를 뿌려가며 풍구 질을 하시던 모습과 덜덜거리던 풍구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돌다 간다.

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과 켜켜이 쌓여가는 검은 재 그리고 허연 김을 날리며 가슴으로 파고들던 구수한 쇠죽 향기는 아버지 몸에서 풍기던 냄새 같았다.

겨울이면 자전거로 마을을 찾아다니는 생선 장수가 있었다. 짐 자전거 뒤에 생선 궤짝을 싣고 우리 마을에도 들렀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오징어나 동태를 사서 국을 끓이셨다. "영희야, 밥 먹어라" 담 너머 부르시는 어머니 목소리에 고무줄놀이도 끝이 나고 마침내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이른 저녁을 먹는다.

초라하던 겨울 밥상에 모처럼 비릿한 생선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생선 한 마리로 온 가족이 먹기에는 뻘건 국물이 전부였지만 따끈한 국물 한 대접만으로도 꿀맛이었다. "소리 내지 말고 먹어라, 앞에 놓인 것만 먹어라, 맛있다고 혼자만 먹지 말아라, 다른 사람 위해 남기고 먹어라"

끝없는 잔소리를 하시다가도 넌지시 밥숟갈 위에 생선 살을 얹어주시던 밥상머리 풍경에 웃음이 난다.

삶의 가치와 기준이 달라지면서 타인으로부터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신세대는 마침내 혼족 (혼자족) 혼 밥(홀로 밥) 혼 술(홀로 술)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혼자 즐기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풍요에서 오는 오류는 아닐까? 오빠 밥그릇을 탐하며 흰 쌀이 많아 보인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부모님의 꾸지람에 마음을 고쳐먹던 어린 날의 결핍은 아마도 나에게 삶의 교훈과 심미안을 갖도록 나를 가르쳐준 셈이다.

"고난은 신비로운 숫돌 이랬던가." 시름을 달래가며 매일 쇠죽을 쑤시던 아버지 그리고 사랑을 지으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나를 철들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무쇠솥 언저리에 시루 번처럼 누워 있던 젖은 양말과 달그락 거리던 우리의 밥상이 오늘따라 더욱 간절해지는 겨울 아침이다.

박영희

효동문학상 작품공모 대상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에덴약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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