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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9.19 16:19:57
  • 최종수정2024.09.19 16:19:57
찌는 듯한 가마솥 더위다. 문학회를 지도하시는 교수님과 몇 분 문우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를 찾았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였다. 앞뜰에는 보기 드문 꽃들이 피어 있고, 카페 안에는 옛날 쓰던 함지박이며 숯 다리미 같은 골동품들이 서너 점 진열돼 있었다. 다른 분들이 나무와 꽃구경을 나간 사이, 나는 카페에 홀로 남아있었는데, 나의 시선이 어느 물건에 오래 머물렀다. 이내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벽에 걸려있는, 그 까망 물건은 바로 삐삐선 가방이었다.

흔히 말하는 '삐삐선'은 전쟁의 산물이다. 여러 가닥의 철사가 검은 비닐에 단단하게 싸여있다. 6·25 사변 때 통신용 전화선으로 사용되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바구니나 가방 같은 가재도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됐다. 여러 가닥을 겹쳐서 빨랫줄로 삼기도 했다.

가만히 다가가 삐삐선 가방을 만져본다. 처음 엮기 시작한 곳도, 마무리하고 매듭을 지은 곳도 찾을 수가 없다. 삐삐선이 가로로, 세로로 촘촘히 짜이면서 가방의 바닥 공간이 만들어졌다. 위로 올라가면서는 듬성듬성 인동초 덩굴 같기도 하고, 혹은 옆으로 누은 8자 모양 같은 그물망을 얼기설기 만들었다. 서너 가닥 줄을 꼬으고, 그 위를 다시 줄로 동글동글 돌려서 단단한 두 개의 끈도 만들었다. 아무렇게나 허투루 만든 게 아니다. 지금은 보기 드문 일이 되어가지만, 그때에는 댕댕이 덩굴로 바구니나 가방을 만들고, 실이나 끈을 꼬고 죄며 매듭을 만드는 솜씨가 다반사였던 때였다. 처음, 삐삐선을 갖고 저 같은 스타일로 가방을 만들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저 삐삐선 가방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도 저 가방이 있었다. 평소에는 사랑채 벽이나 마루 한구석에 걸려있다가, 가끔 어머니께서 장에 가실 때 장 나들이 가방이 되었다. 어머니는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저 가방 안에 넣어서 장엘 가셨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요즈음처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을 게다. 여름방학 때였는데, 나는 어머니와 함께 구말장(지금의 진천 덕산장)엘 갔다. 어머니와 함께 가는 장 나들이는 그 시절 내게는 최고의 호사였다. 그날 어머니가 삐삐선 가방에 큰 장닭을 한 마리 넣어서 장엘 가셨다. 나는 참깬가 팥인가 광목 걸망에 지고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신이 나서 어머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십여 리가 되는 장길을 가고 있었다. 한참을 왔는데도, 저 멀리 신작로 끝으로 보이는 구말장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가재울 앞 냇가를 건너면서, 어머니께서 잠깐 쉬어가자고 하신다.

나는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어머니도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갑자기 '재우야' 하는 어머니 비명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뚝방을 쳐다보니 닭이 푸덕거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다리에 묶은 끈이 풀린 모양이다. 나는 순간 몸을 솟구쳐 닭을 쫓기 시작했다. 내 추격을 피해 닭이 뚝방 아래 논으로 막 도망친다. 한여름의 벼는 내 허리춤까지 차올라왔다. 몇 번인가 닭을 잡을 뻔하다가 논바닥에 엎어지기를 여러 번, 간신히 닭을 붙잡아 다시 어머니 있는 곳으로 왔다. 볏닢에 스친 얼굴이 쓰라렸다. 그러나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 닭을 삐삐선 가방 안에 다시 넣고 이내 장길을 갔다. 그날 어머니는 내 빡빡머리를 자꾸만 쓰다듬으셨다.

저녁나절이 돼서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삐삐선 가방 안에서 물건을 풀어놓는다.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계셨고, 올망졸망한 동생들이 삐삐선 가방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버지가 잡수실 빨간 딱지 소주병도, 곧 외갓집에 신고 갈 내 운동화도 있었다. 그날, 동생들과 먹어보는 비과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노란 김막가 참외가 달긴하지만, 비과에 댈건 못된다.

그날 밤 멍석에서 누워 동생들한테 장에서 본 얘기를 해주었다. 이를테면, 작대기만한 뱀을 파는 땅군 아저씨… 다리 밑에 사는 그지가족 같은… 그러다가 어렴풋 잠이 들었다. 무르팍이 쓰라리다. 어머니가 아까징기를 바르시는 모양이다. 나는 고단한 잠의 수렁에서 깨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꿈결인가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재우 아버지, 오늘 재우 아니었으면 장도 못보고 허탕칠 뻔 했어유'

칠십을 넘겨 팔십을 향해가는 늘그막에 본 삐삐선 가방이, 나를 까까머리 소년 시절로 데려간다. 거기 서른대여섯 살 된 나의 어머니가 하얀색 나일론 물방울 무늬 옷을 입고 장나들이를 가고 계셨다. 삐삐선 장가방을 드시고, 햇볕 쏟아지는 신작로를 한여름 뭉게구름처럼 걸어가고 계셨다. 나를 보고는 자꾸만 웃고 계셨다.

최재우

-중·고등학교 교장 정년

-푸른솔문학 수필 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1회 충북대수필문학상 대상

-전국문화원연합회 향토사논문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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