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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2.27 17:16:42
  • 최종수정2025.02.27 17:17:03
입춘이 지나고 시골집에서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어머니를모시고 왔다.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퍼지는 거실 양탄자 위에서 하얀 이불을 덮고 누워계신다. 아기처럼 새근새근 낮잠을 주무신다. 한 시간가량 차를 타시는 것도 이제는 어지럽다고 하신다.

아들이 사는 집에 오시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시니 세월의 무심함을 느낀다. 세월은 육체의 기운마저 약하게 하고, 당신의 젊음과 소망마저 멀리 떠나갔다. 마냥 빠르게만 지나간 어머니 인생의 남은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잠든 어머니께 뜨듯한 국물을 드리고 싶어서 미리 사다 놓은 고기를 찬물에 담가 두었다. 물기를 빼고 어머니의 고단한 인생처럼 버석하게 마른미역을 불리어 소쿠리에 건져놓고는 크기가 넉넉한 냄비를 꺼냈다. 들기름을 약간 두르고 준비한 미역과 고기를 조심히 볶다가 물을 붓고 이내 강한 불로 끓였다. 냄비 속에서는 고기의 담백한 맛이 우러나고 미역에 붙어 있던 바다 향과 어우러져서 은근하게 감칠맛 나는 향기가 퍼져갔다.

어머니의 삶이 이러했을까. 그간 살아오신 인생길은 들기름이 냄비 바닥에서 뜨거워지는 것처럼 인내해야 했고, 미역처럼 제자리에 붙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그저 세월의 흐름 따라 흔들린 적도 많았으리라. 나는 자신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걸어오신 어머니의 삶을 지금 냄비에서 뽀얗게 우려내고 있다.

시집와서 처음 뵌 어머니는 몸이 성치 않은 지아비로 하여, 가장처럼 묵묵하게 일만 하고 살아오신 분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후 고운 손을 본 적이 없었고 색이 고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서는 적도 별로 없었다.

평안하게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가늘어진 흰 머리칼과 풍상으로 주름지고 까무잡잡해진 얼굴을 슬쩍 만져보니 전해져 오는 거친 살결의 느낌이다. 창문 너머 봄을 기다리는 겨울 공기처럼 마음을 시리게 한다. 거실의 고요를 깨는 숨소리는 규칙적인 음률을 이루며, 살짝 벌어진 입은 그간의 세월을 말하려다 마는 듯 움직임이 없다. 도톰한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계신 작아진 체구의 모습이 꼭 순한 아이 모습 같다. 당신 속에 고였던 시름을 다 거두어서 입춘의 햇살로 녹아 없어지도록 매화꽃이 필 때까지 이대로 기다리고 싶다. 그렇지만, 삶이 뜨거운지 아픈지도 모르고 살아오신 어머니께 어서 이 진한 국물을 떠 드리고 싶다.

30년 전, 철없던 나이에 큰아이를 낳고 산후조리 할 곳이 마땅치 않아 7월 장대 같은 장맛비를 뚫고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픈 몸을 뒤로하고 삼복 무더위에 한동안 미역국을 끓여 주시었다. 나는 땀으로 간이 된 국을 한 달 내내 먹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나는 그 깊은 정의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담백한 미역국을 제일 좋아한다. 아무리 바싹 마른미역도 물에 불리어 수분이 충만해지면 한없이 매끄럽고 부드러워지듯 마음도 섞여 정의 맛이 깃들어진다. 이런 국 한 그릇을 먹는다면 살면서 거칠어진 마음이 저절로 온화해질 것만 같다.

어머니가 몸을 뒤척이신다. 한기가 드는가 싶어 이불을 다시 덮어 드렸다. 깊은 잠 숨소리와 겨울 한낮 거실 깊숙이 들어온 햇살을 받아 냄비 속 미역국은 은근한 맛을 내고 있다. 뽀얀 국물은 어머니가 나를 다독여 주셨던 사랑의 마음이요, 흐물흐물해진 미역국은 나를 편안하게 산후조리 시켰던 그런 맛이리라.

미역국이 구수하고 부드러워진 고기는 어머니의 시름이 굴곡지고 옹이 졌던 삶이 풀어짐이다. 어찌 국물 맛이 깊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을 보면 이렇게 속을 다독여 줄 것 같은 따듯한 국을 끓여주고 싶다. 비록 식탁에 차려 놓고 마주하지는 못하더라도 따로 떠서 건네준다면 구수한 국물 내음이 따스한 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국물은 그 사람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받은 이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사랑은 깊어지리라.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미역국은 사랑을 우려낸 진국이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어머님이 끓여 주셨던 국. 직장 일에 바빠 내 생일도 모르고 지낼 때, 친구가 집 앞에서 기다리다 건네주던 식은 국 한 그릇. 소중한 사람에게 담뿍 퍼주고 싶은 국. 그런 미역국이 김을 내며 잘도 끓고 있다.

그 옛날 어머니께서 나에게 끓여 주던 그런 맛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아기처럼 잠든 어머니가 깨어나면 얼른 밥상에 마주 앉아 뜨듯한 국물을 떠먹으며 흘러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봄이 올 때까지 어머니와 한동안 이렇게 지내야겠다. 집안 가득히 잘 우러난 미역국 내음이 당신이 살아오신 인생의 향기인 듯 그윽하게 퍼지고 있다.

이현자

새롬내과 간호사

충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푸른솔문학 제8회, 13회 카페문학상 수상

제1회 고동주문학상(독후감) 금상 수상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공저:'목련이 필때면''가을을 걷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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