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5.7℃
  • 흐림강릉 2.6℃
  • 맑음서울 7.9℃
  • 맑음충주 6.3℃
  • 맑음서산 3.8℃
  • 구름많음청주 8.8℃
  • 대전 8.8℃
  • 구름많음추풍령 5.0℃
  • 구름많음대구 7.5℃
  • 울산 4.4℃
  • 연무광주 7.6℃
  • 맑음부산 7.1℃
  • 맑음고창 3.5℃
  • 연무홍성(예) 5.3℃
  • 연무제주 8.8℃
  • 맑음고산 7.6℃
  • 맑음강화 6.4℃
  • 맑음제천 1.0℃
  • 구름많음보은 7.0℃
  • 맑음천안 8.5℃
  • 맑음보령 5.2℃
  • 맑음부여 8.5℃
  • 맑음금산 6.3℃
  • 맑음강진군 5.9℃
  • 흐림경주시 4.8℃
  • 맑음거제 7.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2.03.10 15:00:25
  • 최종수정2022.03.10 15:00:25
"아이구 콩나물 아주머니가 여기는 웬일이세요?" 어머니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말이다.

여고 때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합숙을 하며 예절교육을 받았다. 토요일엔 어머니를 모셔다 다과상을 대접해 드리며 배운 것을 실습으로 보여드리는 날이었다.

그날 이웃에 살고 있던 친구 어머니가 하신 말이었다. 콩나물이나 팔고 시장에서 열무나 파는 아주머니가 어쩐 일이냐고 의아해서 물었을 게다.

재래시장하면 제일 먼저 수많은 아픔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셨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지금은 시장 거리만 남아있는 남주동 시장, 그곳에서 좌판도 없이 열무 몇 단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파셨던 어머니.

집에서는 옹기 시루에 콩나물을 직접 길러서 파셨고, 새벽에는 밤새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아 두부를 만들어 팔았다.

오래전 어느 해 빚잔치를 하고 청주로 이사를 나온 후 일곱 식구의 생계를 꾸리신 것은 어머니였다. 열 명이 넘는 학생들 하숙을 치르면서도 밤을 새워 힘들게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길러 팔았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간 노랗고 통통한 콩나물과 야들야들한 두부는 아는 사람만 사서 먹는 안전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라 금방 팔려나갔다.

그것만으로는 하숙생을 위한 반찬값도 부족한 터라 봄부터 가을까지는 앞마당에서 열무를 길러 틈틈이 시장으로 들고 나가셨다.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만 했던 어머니가 시장 바닥에서 열무를 판다는 것은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학교에 가면서 필요한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 자식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냈고 창피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쉽게 빨리 팔고 돌아오려고 열무 단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크게 만들라치면 아버지는 손해 본다고 화를 내셨단다. 아버지는 열무를 팔기는커녕 시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분이셨다.

할 수 없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게 열무 단을 만들어 이고 나가신 곳이 남주동 시장 채소전이었다. 얼른 팔고 돌아와야, 학생들과 가족을 위해 저녁을 할텐데 때론 늦게까지 팔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엔 늘 저녁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으로 해서 왔다. 어머니가 그때까지 시장 어귀에 열무 몇 단을 놓고 계실 것 같아서였다.

낮이 점점 길어지는 어느 봄날 흙 묻은 고무 다라를 머리에 이고 걸음을 재촉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왜소한 체구에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어머니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하얀 교복에 갈래 머리를 땋은 나는 쫓아가서 어머니 머리 위에 얹힌 다라를 번쩍 들어 이고 책가방을 한 손에 들고 앞서 갔다. 어머니는 어서 내려놓으라고 뒤따라오며 만류하셨다.

추래한 옷과 울퉁불퉁한 손마디에 흙 묻은 어머니가 부끄럽지 않았다. 교복이 더러워진다고 내려놓으라고 핑계를 대며 쫓아오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아직도 맴돌아 가슴이 찡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착한 학생으로만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길에서 만나면 모른척하라고 당부를 하셨다. 행여 딸이 친구들에게 창피 당할까봐 어머니가 먼저 모른척하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어 옛날 남주동 시장거리로 나갔다. 거리는 변함없이 그대로 있으나 옛날 시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욱 열무 단을 늘어놓고 부끄럽게 앉아계신 내 어머니의 모습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얼굴만 차례차례 파노라마 되어 허공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곤궁했던 삶은 보이지 않고 그저 하얀 추억일 뿐이었다.

"골라 골라 두 장에 만 원 두 장에 만 원" 귀에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드니 육거리시장이었다. 언제나 삶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시장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할머니들이 자리를 편 난전으로 갔다. 그곳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콩나물도 한 줌 사고 향이 진한 냉이도 샀다. 애써 캐온 냉이를 덤으로 더 주신단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선뜻 받아오질 못했다.

어머니가 시장에 계셨던 탓에 지금까지 시장에서 한 번도 깎아 달라고 조금만 더 달라고 해 본 적이 없다. 늘 주는 대로 비싸면 비싼 대로 샀다. 고생하시던 내 어머니 생각에 서러워서다. 재래시장 거리에 앉아계시던 그때의 내 어머니가 눈물겹게 보고 싶다.

오명옥

교사 정년퇴임

보이스카웃 충북연맹 훈육 위원장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취임 1주년 박상복 충북약사회장 "혁신·소통으로 도민 건강 지킨다"

[충북일보]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은 박상복 충북약사회장은 본보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1년을 '혁신'과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청주시약사회장을 거쳐 충북약사회를 이끌며 시 단위의 밀착형 집행력을 도 단위의 통합적 리더십으로 확장하는 데 집중해 왔다. 박 회장은 취임 후 가장 주력한 행보로 '조직 혁신'과 '소통 강화'를 꼽았다. 정관에 입각한 사무처 기틀을 바로잡는 동시에, 충북 내 각 분회를 직접 방문해 현장의 고충을 청취하는 '찾아가는 회무'를 실천했다. 지난 한 해 괴산, 옥천, 영동을 직접 방문했고, 충주·제천은 총회를 계기로 얼굴을 맞댔다. 나아가 분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워크숍을 처음으로 개최했다. 박 회장은 "청주가 충북 회원의 55%를 차지하다 보니 도 전체가 청주 위주로 돌아갔다"며 "타 시·군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분회장들이 함께 소통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회와의 가교 역할에도 힘썼다. 그는 대한약사회의 한약사 문제 해결 TF와 비대면 진료 대응 TF에 동시에 참여하며 충북의 목소리를 중앙 정책에 반영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전국 16개 시·도 지부 중 충북은 인구 기준으로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