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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9.07 09:52:25
  • 최종수정2023.09.07 09:52:25
지루한 장마가 몇 주째 계속되고 있다.

TV에선 폭우로 인한 산사태 피해와 물이 불어나는 실시간 소식을 알리고 있다.

하천 범람으로 침수된 마을과 논밭의 처참한 현장을 보여준다.

망연자실하며 진흙에 쌓여 있는 가재도구를 바라보는 이재민들의 슬픈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우울하다.

폭우로 한동안 운동도 못했으니 몸이 찌뿌둥한 느낌이다.

기분을 전환하려고 우산을 챙겨서 무심천으로 향했다.

밤새 내린 비로 하상도로가 잠겼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오고 간다.

무심천의 하상도로 인도길! 온갖 잡풀과 금계국, 붉은토끼풀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군데군데 달개비꽃이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머리에 빗방울을 머금고 힘에 겨워 흔들거리는 강아지풀이 수해를 입은 이재민처럼 애처롭게 느껴진다.

양옆으로 빼곡히 늘어선 운치 있는 갈대숲을 거닐며 왜 진작 나오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들기도 한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대부분 우산을 썼지만 쓰지 않은 사람도 이따금씩 지나간다.

나도 우산을 접었다.

어차피 땀으로 젖나 비를 맞아 젖나 샤워는 해야 하고 세탁도 해야 할 터, 비를 맞기로 했다.

촉촉이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걷노라니 어느덧 인적이 뚝 끊기고 작천보의 물소리가 거세다.

주변 둔치에는 며칠 전 범람으로 갈대를 비롯한 작은 나무들이 납작 누워 있고, 그 위로 시커먼 부유물과 진흙들이 엉켜 있다.

가난에, 빚에 찌들어 허리 한 번 못 피시고 버거워 하시던 아버지의 축 처진 모습이 투영된다.

백로 떼가 끼룩끼룩 소리 내며 갈대밭 위를 낮게 날며 먹이를 찾고 있다.

긴 다리를 물에 담그고 유유자적 거닐며 물고기를 잡는 것이 백로의 본래 모습일진대 갈대숲 진흙을 긴 부리로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더없이 안쓰럽고 애처롭다.

백로의 가쁜 날갯짓에서 아버지의 비장함이 교차한다.

예닐곱 개로 이뤄진 다랑논이 긴 장마와 태풍 끝에 논두렁이 무너져 진흙으로 뒤덮이고 벼가 물에 잠겼을 때다.

술을 전혀 못 하시는 아버지는 막걸리에 취해서 논가에 쓰러지셨다.

꼬박 이틀을 누워계시던 아버지께서 이웃 마을 머슴살이를 가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엄마는 젖먹이 동생을 안고 울고만 계셨었다.

어린 육남매의 호구지책을 해결하러 집을 떠나셨던 아버지처럼 백로도 어린 새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 진흙더미를 헤집고 있는 것이겠지.

그때의 아버지의 단호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후드두둑 소리가 커지면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작천보의 물소리는 더욱 거세게 들렸다.

흠벅 젖은 몸이지만 다시 우산을 펼쳤다.

끼룩끼룩 울면서 갈대숲을 헤집던 백로 떼도 어느덧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어린 새끼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겠지.

한낮 짐승도 밤이 되면 새끼가 있는 집으로 향하는데 고된 일을 마치고도 주인집 문간방에서 기거하신 아버지는 얼마나 가족의 품이 그리웠을까.

"일이 힘들고 고단해서 또 곰살맞은 새끼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뛰쳐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역설적으로 자식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으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버티었다"는 함께 머슴살이를 떠났던 동네 아저씨의 말씀이 빗소리를 타고 울려 온다.

자식을 먹이고 공부를 시키려고 그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는데, 그런데 나는 아버지가 머슴살이를 갔다는 얘기가 싫고 창피해서 서울로 일하러 가셨다고 담임 선생님께 거짓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회한이 몰려온다.

"나중에 네가 커서 고생하신 아버지께 잘 해야한다"는 그 아저씨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한데…

효도를 받기는 커녕 자식의 성장도 보지 못하시고 젊디젊은 불혹의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셨으니 한이 된다.

더욱이 아버지의 임종도 못하였다.

훈련시간에 유격장에서 뒤늦게 관보를 받고 귀가했으나 끝내 아버지의 장례식도 못 치른 불효가 천추의 한이 되어 가슴이 미어진다.

비와 뒤범벅이 된 뜨거운 눈물 앞에 망태가방 달랑 메고, 이웃 마을로 떠나시던 아버지의 검게 탄 모습이 떠오른다.

결코 자식들을 굶주리게 할 수 없다는 입술을 꽉 깨문 비장한 얼굴이 먹구름 속에서 슬프게 밀려온다.

신성용프로필

한국방송통신대학 졸업

충북도청 정년퇴직

푸른솔문학 수필 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충대수필문학상, 카페문학상, 녹조근정훈장 수상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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