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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어머니의 섬

  • 웹출고시간2023.07.13 17:37:15
  • 최종수정2023.07.13 17:37:15
사 년 전 어머님의 마지막 생신이 되었던 간월도에서의 일이다. 어머님의 생신이 음력 8월 4일이어서 추석을 보름 정도를 앞두고 일요일에 오 남매의 온 가족이 모여 어머님을 모시고 어머님의 고향인 간월도를 찾았다. 생신날만이라도 고향에서 점심 식사를 하시고 섬을 한 바퀴 둘러 보시며 편하게 쉬도록 하는 것이 효도일 것 같아 시작한 것이 십오륙 년이 되었다.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며 내는 소리와 하얀 포말, 그리고 햇살이 보석처럼 쏟아져 내리는 바다를 조용히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시곤 하신다. 썰물에 물이 빠지면 친구들과 간월암에 건너가 소꿉놀이를 하셨던 기억과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된 사철나무 뒤에 숨어 술래잡기 놀이를 했었다며 미소를 지으신다.

파키슨병에 손은 물론 발까지 불편하신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식당에 들어서니 외증손자들과 거리를 두고 앉고 싶단다. 손이 떨려 수저에 밥이나 반찬을 올려드려야 겨우 드실 수 있으니 어린 손주들에게 불편하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으리라. 어머니와 나는 숟가락을 통해 정을 나누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모진 풍파를 모두 이겨내시고 오 남매를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수저 위에다 반찬을 올려드리면 어머님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어머니는 외로울 때마다 달을 바라보시며 천수만에 달이 뜨면 더욱 아름다운 고향 간월도를 그리워 하셨으리라. 옥색 바닷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윤슬이 아름다운 바다를 그저 한없이 바라보시고 계신다. 돌 위에 핀 꽃(石花), 굴을 따서 어리굴젓을 담으시고, 추운 겨울 굴국을 끓여 추위와 배고픔을 달랬을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시는 것일까!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촉촉히 맺혀오고 상기된 얼굴에는 지난날 고단했던 삶을 뒤돌아보시는 듯 회한이 서려 있다.

어머님은 친정에 무척이나 가고 싶으셨으리라. 첫 아이인 형을 등에 업고 쪽배로 삼십 리 뱃길을 가야 하는 먼 길을 썰물 때 간조에 맞춰 걸어서 가시다가 바닷물이 밀려와 위험에 처하였으나 마침 지나가는 어선에 구조되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셨던 일을 가끔 들려 주셨었다. 바닷길은 성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통과해야 가능한 일인데 갓난아이를 업고 섬으로 가는 길은 위험한 일이었다. 허리까지 밀려오는 거세고 맹렬한 바닷물에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야속한 바닷물은 갓난아이의 발목까지 차오르는 당황 속에 '살려 달라'는 소리조차 나오질 않고, 놀란 가슴은 밤새도록 잠이 오질 않으셨단다.

간월도에는 썰물 때 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 수 있으나 밀물이 들어와 만조가 되면 섬이 되어 배위에 떠 있는 암자처럼 보이는 간월암이 있다. 한 송이 연꽃이 아름답게 물 위에 피어 있는 듯해서 연화대라고도 했단다. 줄배로 관광객들이 오고 가는 모습에 제법 운치가 있어 좋다. 겨우 십여 명이 탈 수 있는데 줄을 이용해 간월암에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한다. 섬은 일출과 일몰 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간월암에서의 낙조(落照)를 조용히 바라보면 아름다운 수묵화 속으로 내 영혼이 빠져드는 느낌이다.

간월도의 명물은 어리굴젓이다. 어머님은 우리 남매들이 방학을 하거나 휴가를 오면 으레 어리굴젓과 간장게장을 손수 담가 밥상에 올려 주셨었다. 결혼 후에도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 때에도 변함이 없으셨다. 간월도의 굴은 다른 지역의 굴과 달리 물날개에 미세한 털이 많이 있어 양념이 잘 배어들어 굴젓을 담그기엔 최상이었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을 만큼 맛이 으뜸이다.

간월도는 간척사업으로 석화가 많이 사라지자 이장과 어촌계에서 바위로 어장을 새롭게 만들어 어리굴젓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금도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 군왕제'가 해마다 정월 보름날 만조 시에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서 백여 년째 이어져 열리고 있다.

어머님께서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후에는 제삿날은 물론 명절 때나 가족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어머님 생각에 어리굴젓을 떠올리게 된다.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귀하고 값비싼 간월도 굴로 젓을 담그시어 수라상처럼 차려 주셨던 어머님, 과연 나는 어머님의 자식 사랑에 얼마만큼 보답해 드렸을까.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때늦은 후회에 가슴이 아려온다.

간월도! 영원한 어머니의 고향, 파도에 옛 추억을 싣고 조용히 다가와 어머님의 향수(鄕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고 있다.

가세현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학회 회원

카페문학상 자랑스런 문인상 수상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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