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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나는 항상 실패한다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20.11.09 14:44:01
  • 최종수정2020.11.09 17:17:00

나는 항상 실패한다 - 김언(1973~ )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항상 시도한다. 나는 항상 물거품이다. 나는 항상 신비하고 절망한다. 나는 항상 이유다. 나는 항상 결론이고 거의 없다. 나는 항상 무한하고 있다. 나는 항상 결정적이고 온다. 멀어져가는 대상에 대하여 나는 항상 단정하고 대상이다. 나는 항상 불가능하고 없다. 홀로 던져져 있다. 나는 항상 마주하고 적이다. 흑이고 백이다. 더 많은 색깔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삭제가 필요하다. 나는 항상 흘러넘치는 선물. 거리 곳곳을 옮겨 다니는 식물. 어떤 시각이든 필요하고 어떤 청각이든 고통을 빼먹는다. 핑계가 아니면 변명으로, 흐름이 아니면 덩어리로. 액체가 아니면 젤이라도 바르고 나타나서 밤을 움직인다. 밤에 움직인다. 나는 항상 서 있다. 거의 죽어 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묵직하게 달아나는 영혼을 붙잡고 있다. 돌로 눌러놓고 있다.
김언은 언어 자체를 사유하고 비판하여 시의 새로운 표현방식, 시의 존재 의미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언어파 시인이다. 그는 시와 비시의 경계를 지워 새로운 시의 발화법과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실험한다. 그는 왜 언어와 시 자체를 문제 삼는 걸까· 언어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현실은 언어로 구축된 체계이자 완고한 구조물에 가깝다. 따라서 기존 언어를 붕괴시키는 반(反)언어를 통해 그는 세계의 통념적 벽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그에게 시는 언어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사건 현장이고, 세계는 언어 전장(戰場)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언어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존재일까? 자신의 필명을 '언(言)'이라 지을 만큼 세계의 변혁은 감염된 언어의 변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그는 믿는다. 감염된 언어란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혀를 지배하는 관습화된 언어, 언어의 사용방식과 규칙들을 가리킨다. 김언은 바로 이 부분에 의문부호를 달고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고찰한다. 세계 자체가 잘못 서 있으므로 역설적으로 시는 계속 삐딱하게 서 있어야 하고 잘못 발음 되어야 하는 무엇 또는 지향인 것이다. 즉 그에게 시는 일종의 '방황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내용보다 내용을 말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 김언의 시의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본다.

첫째, 김언의 시에서 인간은 흔히 비(非)인간으로 그려진다. 윤곽이 사라진 존재, 형상 없는 존재, 인간이면서 비인간인 존재, 유령이나 혼령 또는 거품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목소리는 있으나 형상이 없는 존재로 시공간을 배회한다.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닌 자들로 현실적 논리와 상식을 벗어난다. 유령이나 혼령은 시인의 죽음의식 또는 자유로움을 대리한다. 이는 시인 스스로 자아를 없는 존재로 수용함을 의미한다. 즉 혼령은 공포를 낳는 외부의 방문객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 안에서 불러낸 내부 호출자다.

둘째, 시인은 외부세계를 빛과 중력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언어로 푼다. 이때 혼령은 빛과 같은 존재, 거인은 그들에 비해 중력의 영향을 훨씬 더 받는 무거운 존재로 그려진다. 거인은 혼령보다 현실의 자장(磁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한 손에는 이성을, 다른 한 손에는 욕망을 들고 덩치를 키워 온 인간 군집을 대리한다. 흥미로운 건 죽음의 순간, 존재의 파국 지점에서 '그것'으로 대명사화하여 불안과 공포를 낳는 주체로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무(無)인칭 주어 또는 전(全)인칭 주어로 일반화하여 그것이 우리 모두 일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셋째, 시인의 상상과 사고에 의해 현실은 비현실적 현실로 바뀐다. 사물들 또한 비실제적인 사물로 변신한다. 그러기에 그의 시에서 이름 붙이기는 곧 이름 지우기와 다를 바 없다. 새로운 사물의 탄생은 곧 하나의 이름이 지워지고 새로 태어나는 낯선 사건이다. 김언의 시는 그런 사물들의 탄생 서사이자 현실의 굴절을 보여주는 언어드라마 또는 미스터리물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의 시에서 현실은 언어적 이탈에 의해 관습화된 현실 너머로 이탈된다. 그것이 독자의 눈에는 환상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의 시의 비논리적 환상은 서사 기술(記述)에서 발아하는 것이다.

넷째, 사물은 재현된 사물이 아니며 사건을 낳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사물은 현실의 기능과 목적을 지워버린 이미지로서의 오브제(object)다. 유형에서 무형으로 때로는 무형에서 유형으로 이동하는 운동성을 띠며 인간주의적 시선이 삭제된 대상이다. 때문에 시의 공간은 사물들이 다시 태어나는 무중력 공간, 재생을 위한 자궁에 가깝다. 그래서 사물들은 생사의 시공간을 수시로 옮겨 다니며 불합리한 사건을 낳는다. 사건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의 시에서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인과적 연관성이 짙은 현실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인과적 연관성이 지워진 비현실적 사건이다. 전자보다 후자의 불합리한 돌발적 사건이 자주 벌어진다. 그러니 그에게 시는 사건이 문장이 되는 곳이 아니라 역으로 문장이 사건이 되는 곳이다.

다섯째, 그는 시를 통해 시 바깥을 추구한다. 현실에서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이 기록될 때 대체로 사건의 발생, 전개, 종결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스토리가 구성된다. 그러나 그는 사건을 통해 시 바깥의 시를 추구한다. 그것이 소설이다. 이때의 소설은 장르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기존의 정형화된 시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를 가리킨다. 김언이 쓰는 자신의 시집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그의 시에 불구의 비문(非文)들이 많은 것은 이런 바깥으로의 탈주욕망 때문이다. 그 결과 시적 소통은 차단되고 해석 또한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빠져버리곤 한다. 그렇게 그는 항상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시도한다. 그러니 그는 항상 물거품이다.

최근 그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사건의 구성과 전개보다 사건의 무화 또는 사건의 해산 쪽으로 기울고 있다. 또한 언어 자체보다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의 불확정성 문제로 관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무화된 시인 자신과 행위자인 시 속의 등장인물 사이에 이격과 동일화가 벌어지고 있다. 이격이 벌어질 때 행위자는 시인의 조력자, 공모자, 고용자, 친구 등으로 나타나고 동일화될 때는 혼돈과 파탄을 겪는 자, 없는 자, 무화된 자 등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그는 항상 결론이고 거의 없다. 그렇게 그는 거의 죽어 있다. 그렇게 그는 계속 움직인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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