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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며

  • 웹출고시간2021.12.30 17:05:58
  • 최종수정2021.12.30 17:05:58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며 친구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했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54년,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 한 친구들을 만나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알아볼 수 있을까? 더구나 마스크까지 썼으니 설레는 마음에 혼란스럽다. 한 시간 일찍 식장에 도착하였다. 친구와 친구 부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동창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두 명씩 모여들었다. 동창 한 명이 나를 보고는 "너 세현이 맞어 마스크 벗어봐 아 옛 모습이 살아 있네, 까무잡잡 했었지 하하하" "그래 나는 통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미안한데 이름이 뭐냐" "너와 절친이었는데 기억이 안나니? 서운하다" "마스크 벗어봐 아 이제 생각난다. 선영이지 맞지, 장교로 군생활 하고" 열 명 중에 서너 명은 알겠고 나머지는 전혀 머리에 떠오르질 않는다.

혼주와 나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고 군대도 한날 한시에 입대 해서 훈련도 같이 받았다.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동창까지 만났다. 감회가 더욱 새롭다. 예식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친구들은 하나둘 피로연 식당으로 모였다. 반갑다며 주거니 받거니 술을 권한다. "고맙다 나를 반겨줘서, 동창 모임에 한 번도 참석 못 해 그동안 미안하다"며 회포를 풀었다.

반세기 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미리 익히고 가고 싶었지만 나는 초등학교 졸업 앨범이 없다.

중학교 입학금과 교복, 책, 공책, 등을 살 형편도 그랬지만 동생들이 세 명이 있어 학비도 문제지만 막내 삼촌과 고모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 부모님과 할머님이 고심하며 노심초사 하시는 모습을 보니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졸업여행도 말씀은 드렸지만 조르지는 못했다. 졸업여행비가 100원이었다. 중학교 입학금이 1110원이었으니 큰돈이었다.

1960년대의 우리네 삶은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한국 전쟁의 폐허 속에 무척이나 고달펐다. 중학교 진학은 졸업생 중 삼분의 일 정도였다. 입학금과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솔방울을 따서 시장에 팔았다. 민둥산에 리기다소나무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린 내가 솔방울을 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 가마니에 80원, 오일 정도는 따야 한 가마니다. 나는 지게에 지고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십리 길을 걸어 시장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일을 하라는 말씀은 자주 하셨지만 공부하라는 말씀은 별로 없으셨다. 하지만 아버님의 속마음은 '열심히 공부해라' 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라 잃은 설움, 배우지 못한 설움, 배고픈 설움에 대해 장날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시고 말씀하셨던 것을 나는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받아 들은 다음 날 지나치기만 했던 모교를 찾았다. 옛 건물은 없고 새로 지은 학교건물이다. 운동장은 파랗게 인조 잔디로 정리되어 있고 소나무가 빽빽하던 풍치원風致園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소나무 가지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잘려나가고 죽어 베어진 나무의 밑둥은 세월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소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함과 매미의 울음소리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송림松林 숲은 운동장 옆에 이백여평 쯤 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다른 학교에는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자랑삼아 말씀하셨었다. 풍치원의 소나무를 보니 논어에 나오는 '세한지송백歲寒知松柏'이란 글이 생각난다.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뜻으로 어떠한 역경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지조와 의리를 지키는 군자의 마음을 말한다.

앨범을 갖고 있는 친구가 카톡방에 빛바랜 흑백앨범 열 여섯장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돋보기를 쓰고 오십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선생님들과 120명의 친구들이 말없이 반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 뭐 그리 바삐 떠났는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 허망하고 애잔하다.

노란 은행잎이 소리 없이 빙그르르 내려앉는다. 늙음에도 미학美學이 있지 아니한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일에만 매달리지 말자. 여유를 갖고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보자. 동창들을 자주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이웃에 봉사하며, 황혼黃昏의 시간을 느껴야겠다.

프로필

가세현

푸른솔문학 신인상
카페문학상 수상
푸른솔 문학회 회원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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