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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7.27 17:06:57
  • 최종수정2023.07.27 17:06:57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달을 바라보며 만사를 잊고 달빛에 젖어본다. 온 세상이 밝고 훈훈한 바람이 분다. 꽃잎의 날갯짓을 보며 마음속에 벅찬 감동이 인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것임을 느껴본다.

오랜만에 달을 보니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아스라이 밀려왔다. 당뇨로 고생하는 딸을 매우 안타까워하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검은색 물병을 들고 오셨다. 그 속에는 오래 묵은 똥바가지를 어렵게 찾아서 씻고 또 씻어 삶은 물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도 믿기지 않지만 병이 나았다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먹어 보라고 하셨다. '얼마나 노심초사했으면 이런 수고를 하셨을까'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어머니를 끌어 앉고 서러운 마음에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눈시울을 적신다.

요양원에 계실 때 모시고 와서 한두 달이라도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어 드리며 옛날 고향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 드렸으면 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다음에, 나중에"라며 미루셨다. 어머니의 마음은 알고 있지만 서운하다 못해 원망스러웠다. "서울에 언니와 동생이 있으니, 이 어미 걱정은 하지 마라. 몸 아픈 네가 마음 써 주는 건 고맙지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다"며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눈물을 글썽이시던 어머니. 지금도 마음이 아려온다. 사별하고 나서야 어머니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언제나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주시며 희망을 주셨던 어머니의 사랑이 어둠을 밝히는 은은한 달빛으로 젖어 든다.

그 달빛 아래 기억을 더듬으니 옛 생각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머릿속에 새겨 두었던 망각의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정 두고 떠나온 세월의 그리움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낸 아련한 기억들로 이어졌다.

어머니가 읍내 오일장에 오시는 날은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터로 달려가 어머니를 만난다. 아침에 뵙건만 반가운 마음에 어머니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외할머님 댁과 작은 집에 들르시다 보니 늘 장보기가 저물었다. 오늘도 어머니가 장짐을 머리에 이고 읍내에서 집으로 향할 때는 달이 떠 있었다.

달빛 속에 어머니와 함께 밤길을 걸으니 편안하고 행복했다. 고향 집으로 가는 길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어느새 따라왔는지 개울물 속에 달이 떠 있었다. 개울물을 건너갈 때 물결 위에 달이 웃고 있다. 일렁이는 물결 따라 달이 일그러지더니 물속에 잠겨 버렸다. 달을 건지고 싶다. 물결에 달이 사라졌다. 달은 정겹고 신비롭기만 하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달을 두고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만 보면 왠지 가슴이 멍해진다. 끝없이 달빛 어린 밤길을 더듬고 싶어진다.

나는 추석이 되면 보름달을 맞으러 뒷동산 언덕에 올라 달 뜨기를 기다렸다. 달은 가끔 지나는 구름 속에 몸을 숨겼다가 나와 지긋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달님과 눈이 마주치면 어린 시절 어머니와 가족의 바람인 남동생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기도 했었다. 여느 때보다 크고 밝은 보름달이 뜨면 정성드려 큰절을 했다. 소원도 다른 날보다 더 크고 간절했다. 언제나 같은 달인데 추석의 보름달이 뭐가 다를까마는 달의 영험함에 힘입어 언젠가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믿었다.

달은 무한한 생명력이기도 했다. 나도 내일은 좀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하는 기대감으로 기도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밝은 달을 한참 들여다보노라면 그 안에 어린 시절이 두둥실 나타난다. 고달프셨던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떠오르는 정겨웠던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동네 어귀에 있는 우물로 향했다. 한낮에 일하느라 흘린 땀을 씻었다. 둥근달은 어머니의 물동이에도 떠 있다. 달을 머리에 이고 모퉁이 길을 돌아서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튿날 새벽 장독대 하얀 정화수그릇엔 새벽달이 담겨 있었다. 두 손을 합장하고 간절히 기도하셨다. 마음에 서린 한(恨)의 기도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달을 보며 눈물 속에 불러 보는 따뜻한 이름, 어머니다.

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원한 것은 없다. 삶은 짧을수록 더 소중하고 살아 있는 시간이 내 것임을 실감한다. 덧없이 느껴지는 삶, 남은 생을 잘 정리하고 싶어진다. 서럽도록 힘들게 허둥대며 달려온 세월이다. 오늘 밤처럼 휘황찬란한 달빛에 젖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쉬엄쉬엄 거닐어 본다.

정금자

'푸른솔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충북대학교 수필문학상, 효동문학상 수상

수필집 '조각보' 집필

'삶의 향기', '목욕' 외 다수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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