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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기차는 간다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7.04 18:03:09
  • 최종수정2019.07.04 18:03:09
[충북일보] 허수경은 걸쭉하고 투박한 경상도 말투와 가락으로 노동하는 농민들의 신산한 삶을 담아낸 시인, 인간의 고독과 세계의 위악을 감성의 언어로 풀어낸 시인이다. 그녀의 시적 자아는 방랑자 또는 유랑자처럼 떠도는데 그녀의 시가 완결구조가 아닌 미완성 상태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방랑자에겐 영원히 안주할 집이 없고 이 떠돎이 광대한 포용을 낳는다. 즉 그녀의 시의 저력은 상처의 주체였던 남정네들까지 크고 넉넉하게 품어 안는 동양적 대모(大母)의 사랑에서 발원한다. 이 큰 사랑을 품기 위해 그녀는 수많은 슬픔의 시간을 통과했으리라. 그 상처의 시간들이 썩고 썩어 시의 거름이 되었으리라. 그러니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기차는 간다 - 허수경(許秀卿 1964∼2018)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그녀의 시 바닥에는 비장한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이 강물처럼 도도히 흐른다. 진주 남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그녀는 그 속에 민중과 자신을 설화적 상상력으로 투영시켜 슬픔의 시대와 역사를 재조명한다. 남강 강물 같은 그녀의 시에서 물 이미지는 비애와 생명의 운동성을 나타낸다. 때로는 바닷물처럼 흐르고 흘러 사랑의 양수가 되고, 때로는 젖과 국과 술이 되어 병든 자를 치유하는 약물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불(빛) 이미지는 파괴적인 전쟁과 폭력의 세계를 나타낸다. 하지만 해, 별, 달처럼 어둠을 밝히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온기 없는 밤의 세계를 찾아드는 긍정적 희망의 존재로 등장한다. 또한 물과 불(빛)의 융합이미지도 자주 나타난다. 주로 끓고 익는 음식이나 불꽃 등으로 나타나는데, 생명을 낳아 후손을 이어주는 자연물로 사용된다.

전체적으로 허수경의 시는 하나의 중심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새 또는 탄환이라기보다 대지에 몸을 담고 하늘로 가지를 뻗는 나무에 가깝다. 가늘고 상처 난 가지들이 허공으로 갈라지면서 규정하기 난감한 어떤 고독감을 낳는다. 이 고독의 정서가 울림과 공감을 낳는다. 그것은 곧 인간의 존재조건이면서 한없이 여리고 부드러운 생명에 대한 시인의 연민 같은 것이다. 그 고독 또는 연민을 시인은 미라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감성의 언어로 발굴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시인의 몸이 겪은 감동과 울음이 시어 속에 스며들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죽음 속의 생, 생 속의 죽음을 목격하고 성찰하게 된다.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에서 시인은 커다란 가슴으로 가족, 고향, 민중, 조국, 역사, 민족을 품으려 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공동체로 인식하여 끌어안으려는 대모여신(大母女神)의 넉넉한 마음을 드러낸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 대한 투쟁적 페미니즘 차원을 넘어 보다 큰 차원의 사랑을 실천한다. 위대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여성을 수탈해온 아버지라는 상징적 존재들 전체를 품어 안고 어둠의 역사를 포용적 사랑으로 녹여내려 한다. 몇몇 시에서 여자아이들은 잔혹한 군인에게 처녀성을 짓밟히고 임신하여 아이들을 낳는데, 이 아이들은 팔 다리 없는 아이로 태어나거나 총에 맞아 불구가 된다. 이런 공포와 폭력의 남성 세계까지 품어 안고 그녀는 대승적 사랑을 실천하려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 시사에서 매우 희귀한 장면인데, 이 대승적 사랑 이면에는 남성 지배 역사에 대한 연민의식이 깔려 있다. 즉 아버지들 또한 고통 속에서 살아온 비극적 존재라는 인식, 한반도의 역사 자체가 여성 남성 상관없이 거대한 슬픔의 강물이라는 인식이다.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1992)에서는 소외된 인간들, 그들의 개별적 세계에 천착하지 않고 일반적 삶 전체를 주목한다. 삶의 어두운 늪지 바닥에 깔려 있는 어둠과 허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시인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삶은 무엇이고, 산다는 건 무엇이고, 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이 고통스런 물음과 물음에 대한 고민이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인간의 비극적 존재조건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은 허무와 비천함, 절망과 폐허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삶과 세계에 근원적 질문을 계속 던져 삶과 세계의 허구적 위악성과 비극성을 비판적으로 보려 하고, 나 아닌 타자들에 대해 관심을 넓혀나간다.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허무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깃든 허무의 심연까지도 끌어안고 살아가려 한다. 그러니 그녀에게 세상은 깊은 병이고, 삶이란 병에 정들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위에 소개한 시 「기차는 간다」는 『혼자 가는 먼 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밤꽃 진 나무 아래서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시인은 아픈 추억에 휩싸인다. 사람이 떠난 자리와 꽃이 진 자리는 닮아간다. 상처와 그늘이 닮아가고 세월 속에서 그리움의 문양도 닮아간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몸서리쳤을 시인, 이제 그녀도 우리 곁을 떠났고 그녀가 떠난 빈자리에 깊고 서늘한 그늘만 드리워져 있다. 몸이 떠난 빈자리엔 그녀 시의 향과 울음이 샘물처럼 맴돌고 있구나. 아픈 것들은 아픈 것들끼리 몸이 닮고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구나.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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