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구두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71

  • 웹출고시간2019.04.04 17:46:37
  • 최종수정2019.04.04 17:46:37
[충북일보] 송찬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989)는 어두운 대지의 사람들,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바쳐진 영혼의 비가(悲歌)다. 현실의 부조리, 인간의 실존과 말의 한계상황에 대한 성찰이 담긴 이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두 개의 중심 테마는 감옥과 죽음이다. 사각형 관(棺)이 상징하는 죽음은 시인의 고통의 원초적 뿌리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며, 말 또한 죽음과 동궤의 한계적 감옥으로 인식된다. 시인의 죽음의식은 사각형 사물뿐만이 아니라 달, 물방울, 달걀 같은 둥근 형태의 사물들에서도 나타난다. 즉 시인에게 세계는 출구 없는 둥근 감옥이고, 거대한 유폐와 폐허의 새장이고, 상징적 언어수용소다. 이 폐쇄구조물 속에서 시적 자아는 지속적으로 고통을 겪고 고통 속에서 탈옥을 꿈꾼다.

송찬호의 시에 나타나는 자아는 크게 세 가지다. 세계로부터 상처와 고통을 받는 자아, 동심의 순수세계를 그리워하는 자아, 감옥으로부터 탈출과 전복을 꿈꾸는 자아 등이다. 첫째, 상처투성이 자아는 비극의 세계에 내던져진 실존적 인간, 고통의 현실에서 상처받는 시인 자신을 대리한다. 이 자아가 투영된 시들은 아프고 암울한 이미지들 때문에 현실의 비극성이 부각되고 슬픔의 무게와 깊이가 느껴진다. 둘째, 동심의 자아는 원시적 생명 공간, 동심의 유년 세계로 돌아가길 갈망하는 원초적 회귀본능을 대리한다. 이 동심으로의 회귀 욕구가 시간, 공간, 사물을 무화시킨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는 하나의 혼합 액체처럼 뒤섞이고, 사물과 시인과 동식물은 하나의 몸으로 결합하여 재탄생한다. 셋째, 감옥에 갇힌 자아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인식, 세계와 말과 시간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시인의 절망을 대리한다. 시인에게 세계, 말, 시간은 모두 폐허의 감옥인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세계와 말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대결의지를 드러내고, 시간에 갇힌 자의 불안과 죽음의식을 빈번하게 드러낸다.

구두 - 송찬호(宋燦鎬 1959~ )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보는 것이다
말의 감옥으로부터의 탈주 욕망은 두 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언어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첫 시집에서 말에 대한 사유가 시인의 진술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났다면, 두 번째 시집에서는 사유가 사물 속으로 스미어 섞여 들어가 의미가 보다 중층적이고 복잡해진다. 첫 시집에는 시인은 시적 구원의 문제, 즉 시의 언어를 구원을 위한 '존재의 집'으로 바라본다. 반면에 두 번째 시집에서는 그런 구원에 대한 언어의 한계성을 자각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야심 찬 도전을 보여준다. 인간과 사물과 언어의 실존, 나아가 의미의 증발에 대해 사유하고 천착한다. 그것은 곧 사물과 언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와의 치열한 고투고, 틈에 대한 치열한 사유행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시인은 언어체계의 굴절이 인간의 인식체계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고찰하고 반성한다.

'구두'는 말과 사물, 현대인의 삶에 대한 시인의 반성적 탐색을 담고 있다. 새장과 구두는 각각 새와 시인을 가두는 감옥으로 말이면서 사물이다. 새장 속의 새는 새장이라는 제도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상징적 초상이자 말이라는 관습에 길들여진 시인 자신의 초상인 것이다. 흥미로운 건 시인이 오늘 새 구두를 샀고 그것은 구름 위에 올리어져 있고 젖지 않은 한 척의 배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는 시인이 기존의 낡은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로의 비상, 삶의 구원 가능성을 꿈꾸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운 삶과 예술적 갈망은 그의 시 전반에 나타나며, 세 번째 시집『붉은 눈, 동백』(2000)에서 그는 앞의 두 시집에서 기울였던 관심들을 종합한다. 심미적 구원의 가능성을 동백의 개화 이미지를 통해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첫 시집이 제기했던 존재의 탐구라는 형이상학 미학과 두 번째 시집이 제기했던 언어의 감옥이라는 구조주의 미학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다.

/ 함기석 시인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