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누에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8.29 17:35:16
  • 최종수정2019.08.29 17:36:09
나희덕의 시는 화려한 수사나 기교가 거의 없다. 구조 또한 복잡하지 않고 단아한 시의 표준규범 안에서 펼쳐진다. 그런데도 슬픔의 감정을 낳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왜 그런 걸까? 사물이나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 연민의 감정이 실려 있고 그것이 과잉되지 않은 절제된 문장으로 선명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기억 속의 나무, 재가 되어 사라진 집처럼 지금은 부재중이지만 계속해서 시인의 몸을 맴도는 어떤 것들을 시적 대상으로 택하기 때문이다. 즉 그녀의 시는 부재하는 풍경들에 대한 시인의 사유응집체이자 시인 자신의 또 다른 육체이다. 그렇게 풍경의 세계는 시인의 몸과 섞여 슬픔을 자아내는 장소가 되고 시간이 된다. 이는 그녀의 시가 사라진 존재들, 부재하는 대상들로부터 눈물과 모성으로 건져 올린 서정의 언어임을 암시한다. 그녀에게 서정은 인간에 대한 공감이며 삶에 대한 물음인 셈이다.

누에 - 나희덕(羅喜德, 1966∼ )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 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서정은 나무속의 물기와 같다. 어떤 사물, 어떤 사람, 어떤 시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인의 몸과 마음에 더욱 생생하게 물기를 띤 존재로 살아난다. 즉 대상의 소멸은 사라짐이 아니라 시인의 육체 안으로 깊어져 시의 풍경을 이루게 된다. 죽음, 부재, 망각 등의 주제를 다루는 시에서조차 생명에 대한 희망과 따뜻한 물의 기운이 잔잔히 흐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또한 모성은 나희덕 시의 존재 기반이다. 삶의 근저고 심연이고 쉽사리 가 닿을 수 없는 자하의 샘과 같다. 이 모성의 물줄기를 지상으로 뽑아 올리는 자가 시의 화자들이다. 여성의 몸을 지닌 이 화자들은 노출과 은폐, 의식과 무의식, 생명과 죽음, 말과 침묵 사이에서 끊임없이 출렁이며 움직이고 길항한다. 그 과정이 곧 시인의 사랑이고, 이런 모성의 사랑은 시 「누에」에 잘 드러나 있다.

작은 누에에 비유된 어미의 굽은 육체,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내고 빈 고치가 된 누에의 몸은 슬픔 그 자체다. 비단실 두 가닥으로 표현된 두 딸이 어미인 빈 누에고치를 감싸는 모습은 짠한 감동과 울림을 낳는다. 그들의 모습을 나(시인이자 화자)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는데, 나의 몸은 곧 아기를 출산할 만삭이다. 두 자매와 어미가 다가올수록 그들과의 거리는 점점 없어지고 결국은 그들과 나는 일체화된다. 이 서정적 동일화를 시인은 두 비단실에 휘감겨 따라간다고 말한다. 이는 시인이 두 자매의 어미에서 자신의 어미를 떠올리고 자신의 어미 또한 자식들을 위해 몸 속의 실을 다 뽑아내고 빈 누에고치가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어미의 희생이 낳는 죽음의 쇠락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을 읽어내고, 자신 또한 언젠가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빈 누에고치가 될 것임을 예감하는 시인의 눈길이 울림을 낳고 있다. 모성이 낳는 사랑과 희생이 세상을 순환시키는 아름다운 힘임을 보여주는 감동의 시다.

함기석 시인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코로나19 극복 희망리더 - 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최고의 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장부식(58)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최고'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기업인으로서 '치열한 길'을 밟아왔다. 장 대표는 2002년 12월 동물·어류·식물성 '저분자 콜라겐 펩타이드' 제조 업체인 씨엔에이바이오텍을 설립했다. 1980년대 후반 화학관련 업체에 입사한 이후부터 쌓아온 콜라겐 제조 기술력은 그 당시 이미 '국내 톱'을 자랑했다. 씨엔에이바이오텍이 설립되던 시기 국내 업계에선 '콜라겐'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콜라겐은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성분으로 주름을 개선하고 관절 통증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장 대표는 '콜라겐을 녹이는' 특허를 냈다. 고분자 상태인 콜라겐은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다. 인체에 쉽게 흡수될 수 있도록 저분자화, 쉽게 말해 '녹이는' 게 기술력이다. 장 대표는 콜라겐과 화장품의 관계에 집중했다. 화장품은 인체에 직접 닿는다. 이에 콜라겐을 쉽게 흡수시킬 수 있는 것은 화장품이라고 결론내렸다. 장 대표는 "2005년 말께부터 '보따리 짊어지고'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당시 어류에서 콜라겐을 추출하는 기술을 갖고 1년에 15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