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花蛇)'는 미당이 22살 되던 해에 발표한 초기 대표작으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관능과 생명의 욕구를 뱀 이미지로 표출한 작품이다. 화사(花蛇)는 꽃뱀을 의미한다. 뱀은 서구 기독교의 시각에서 볼 때 이브를 유혹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한 원죄의 뿌리다. 주목되는 것은 뱀 자체가 아니라 뱀에 대한 시인의 이중적 태도다. 시인에게 뱀은 매혹과 공포, 아름다움과 징그러움을 동시에 낳는 이중적 존재인데, 이는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즉 시인에게 뱀은 인간의 내면성이 투사된 동일화된 존재이다.
초기의 탐미적 여정 이후 그는 한국의 토속정서를 육화하여 울림 깊은 시들을 써낸다. 시집 '귀촉도(歸蜀途)'를 통해 동양적 사유의 세계를 탐색하고, 시집 '동천(冬天)'을 통해 불교적 영생과 인연(因緣)의 순환적 세계를 노래하고, 시집 '질마재 신화(神話)'를 통해 고향의 토속생활과 원형적 설화를 형상화한다. 이처럼 그는 우리민족의 언어를 빼어나게 형상화하여 시의 맛과 품격을 한껏 드높였다. 그러나 이런 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삶에서 보여준 기회주의적 행동, 현실인식 부족과 역사의식 결여 때문이다. 이런 비판들이 억압적 시대상황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예술의 탐구과정에서 그가 치른 어쩔 수 없는 대가였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에 대한 비판을 무마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화사(花蛇)/서정주(徐廷柱 1915~2000)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 듯…석유(石油) 먹은 듯…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배암.
우리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배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