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과 마지막 연은 꽃의 개화와 낙화를 리듬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내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은 '저만치'와 '혼자서'와 '좋아'다. '저만치'가 환기시키는 유폐성은 물리적 거리이면서도 꽃의 숙명적 존재성을 드러내려는 시인의 심리적 거리다. 또한 '혼자서'는 꽃과 꽃, 너와 나처럼 모든 존재가 숙명적으로 지닌 실존적 고독, 초월적 고립감을 상기시킨다. 그런 꽃이 '좋아' 산에 사는 작은 새는 시인의 자아가 투영된 객관적 상관물일 것이다. 그러기에 꽃과 새의 관계는 자연물의 관계에서 나와 너, 너와 그, 그와 그녀의 관계로 점차 확장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꽃의 피고 짐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서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지닌 삶과 죽음의 반복 순환을 의미한다. 또한 꽃과 새가 공존하는 산이라는 공간은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며 위로의 노래를 부르는 이 세상이 된다.
외관상 단순해 보이지만 이 시는 모든 존재들이 지닌 근원적 고독을 우수(憂愁)의 시선으로 내면화한 큰 작품이다. 깊은 슬픔이 배어 있음에도 시인은 한 방울의 눈물도 신음도 없다. 시는 시각적 문장과 비시각적 여백이 함께 말하는 장르다. 문장으로 전할 울음을 여백의 침묵으로 전할 때 시의 파장은 커지고 메아리는 깊어진다. 이 점에서 김소월은 탁월하다.
산유화(山有花) / 김소월(金素月 1902∼1934)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