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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함기석의 생각하는 詩 18

  • 웹출고시간2016.10.13 18:41:20
  • 최종수정2016.10.13 18:41:20
1930년대 중반의 우리 문단은 목적성이 강조된 프로계열의 시, 반봉건성과 실험성이 강조된 모더니즘계열의 시, 전통적 율격이 강조된 전통시계열의 시들이 뒤섞여 있던 시기다. 이런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용악은 모더니즘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으면서도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는 문학이 민족 전체의 이익과 통합을 위한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일제에 대해 극심한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해방 후의 미군정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감을 드러낸 건 사상적 거부와 저항성 때문이었다. 해방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그는 정치적 물살에 휩쓸리면서 무기로서의 시를 넘어 직접 개혁운동에 뛰어든다.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문인들이 대거 월북한 후에도 서울에 남아 남로당의 예술가 활동에 참여한다. 미제와 이승만 정부에 반대하는 문화인 모임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다. 이후 6·25전쟁이 터지고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그는 출옥하여 고향이 있는 곳으로 월북한다.

이용악은 함경북도 경성이 고향으로 북방의 정서를 바탕으로 민족주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유년기의 뼈아픈 체험들,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유랑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조선 민초들의 비애가 서려 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 해체 경험은 일제강점기 시절 고향을 잃고 떠돌던 유랑민들의 삶을 다룬 여러 시편에 잔잔히 녹아들어 있다. 이용악에게 고향은 뿌리 뽑힌 조선인의 한(恨)이 서린 아픔의 공간이자 끊임없이 유년의 그리움을 자아내는 모성적 안식처였다. 그의 시에 강, 바다 등의 물 이미지가 자주 나타나는 것은 모성회귀 본능, 신화적 여성 세계로의 환원욕구 때문일 것이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는 낯선 타향에서 침상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최후를 그린 시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찬 밤, 러시아 땅까지 다니면서 힘들게 자식들을 키운 아버지가 목침을 베고 누워 있다. 두 눈을 감은 채 얼음장처럼 식어가는 손발, 뒤늦게 의원이 다녀간 후 싸늘하게 죽음을 맞는 아버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화자의 슬픈 감정이 이입된 청각이미지로 비애의 서정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아버지는 시적 화자의 가족사적 아버지이면서도 일제치하 우리 민족 전체의 고난과 유랑을 상징하는 민족사적 아버지이기도 하다. 때문에 죽은 아버지 머리맡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가족들은 우리 민족 전체를 대리하고,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목 놓아 우는 그들의 애절한 모습은 고통 받던 우리 민족의 비극의 초상이기도 하다.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 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자래운: 자라게 한, 키운*아무을 만 : 아무르 만*설룽한: 춥고 차가운*가르쳤다: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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