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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5.16 16:08:55
  • 최종수정2019.05.16 16:08:55
[충북일보] 박상순의 시는 예술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바탕으로 반(反)리얼리즘 전위미학을 추구한다. 열린 시간과 공간, 열린 상상과 기억, 열린 형식과 이미지를 추구한다. 악몽의 파편들을 전시하는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그의 시는 기호의 관습적 사용을 거부하고 의미의 확정 또한 거부한다. 결핍된 욕망과 아픈 기억들, 고통과 슬픔의 이미지들이 자주 나타나는데, 흥미로운 건 이런 이미지들을 쏟아낼 때 시인은 결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이미지 배설을 즐기는 '놀이하는 자아'가 나타나 명료한 시적 혼돈을 유도한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살펴본다.

첫째, 그의 시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재미있다. 그의 시에는 가족관계에서 느끼는 주체의 고립과 단절이 자주 나타난다. 육체 또한 하나의 전체 덩어리가 아닌 팔, 다리, 머리 등등 각각의 잘린 파편으로 등장한다. 이 절단된 신체 이미지들이 독자에게 그로테스크한 거부감을 주지만 그것은 고립되고 단절된 자아의 대리물들이다. 그의 시가 악몽의 동화 같으면서도 비애감 짙은 정서적 울림을 낳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그의 시는 현실을 기호화한다. 그의 시에서 대상은 현실이 아니라 언어(기호)다. 그는 현실을 언어로 노래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뭉개버리는 기호의 세계를 그린다. 즉 그에게 시는 기호화된 자아와 세계를 다시 기호화하는 일종의 메타기호다. 현실과 자아와 기호 사이의 경계 붕괴를 통해 시인은 자아도 세계도 헛것이고 환상이고 조작된 일루전임을 자각시킨다. 그의 시에 유머러스한 카툰의 상상력 나타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 박상순(1961~ )

기차가 지나갔다

그들은 피 묻은 내 반바지를 갈아입혔다

기차가 지나갔다

그들은 나를 다락으로 옮겨놓았고

기차가 지나갔다

첫번째 기차가 아버지의 머리를 깨고 지나갔다

두번째 기차가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지나갔다

세번째 기차가 내 눈동자 속에서 덜컹거렸고

할머니의 피묻은 손가락들이 내 반바지 위에

둑둑 떨어지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갔다

나는 뒤집힌 벌레처럼 발버둥쳤다

기차가 지나갔다

달리는 기차에 앉아

흰 구름 한 점 웃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갔다
셋째, 그의 시는 메시지를 거부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메시지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시의 방식을 거부한다. 그는 특정 메시지 생성을 목표로 시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시라는 결과물 자체보다 시가 생성되어가는 과정을 시니피앙 놀이 또는 구조화 놀이로 받아들인다. 이런 유희적 언어운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시 심층에 암울한 공포와 불안과 상처가 자리 잡게 한다. 이는 그의 시 쓰기가 언어놀이 하는 의식적 자아와 불안에 휩싸인 무의식적 자아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놀이임을 암시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시인이 왜 자기방어심리가 투영된 초(超)현실 풍의 낯선 그림을 그리는지 이해된다. 시 속의 낯선 이미지들은 시인 자신의 결핍된 욕망의 파편들이고 상처 난 기억의 깨진 조각들인 셈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초현실적 이미지 생성작업은 곧 자신의 유골을 하나하나 건져 올리는 외롭고 고된 자기싸움인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물들이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생성되었음에도 시인 개인에게만 귀속되지 않고 현대사회 개개인의 내면성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인과성과 계기성이 탈락된 부조리한 현실, 그런 폐허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결핍된 자아를 대리한다.

그러기에 박상순의 시에 나타나는 욕망의 문제, 자아의 고립과 파탄, 아버지와 어머니의살해 충동, 강박과 자학에 사로잡힌 자아, 놀이하는 자아 등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오이디푸스 삼각형은 나, 어머니, 아버지의 삼자관계를 통해 욕망의 문제를 해부한다. '나'는 태어나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분리된다. 즉 자아의 최초 소외체험은 '아버지'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훗날 아버지에 대한 살해충동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법과 질서라는 상징계의 억압의 주체이며 나의 욕망의 결핍을 낳는 주범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욕망은 탄생하고 욕망은 억압된다. 그러나 라캉은 욕망은 끝없이 결핍되고 분열된다고 본다,라캉에게 욕망은 끝없는 결핍이고 심연이고 분열이다.

박상순의 시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전 단계와 이후 단계가 모두 나타난다. 위의 시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도 그렇지만 그의 시 전반에 걸쳐서 '나'와 '어머니'는 거의 동일시되지 않는다. 즉 자아의 심리적 충족이나 황홀감은 결코 채워지지 않고 영원히 결핍된다. 나아가 나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무수히 분열되어 있다. 달려오는 기차라는 사물에 의해 아버지도 어머니의 제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들이 사라진 후 '나'는 고립과 어둠 속에서 등이 뒤집힌 채 사지를 버둥거리는 기이한 벌레가 된다. 이는 오이디푸스 삼각형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시각에서 볼 때 박상순의 시에 나타나는 아버지 살해충동은 단순히 가족관계로서의 부친 제거 욕망을 넘어서서 상징계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극렬한 부정의식, 일체의 정치적 폭압이나 제도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고픈 자유의 갈망일 수 있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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