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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붉은 山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6.13 17:22:38
  • 최종수정2019.06.13 17:22:38
[충북일보] 조용미의 시는 자연과 우주의 근원, 존재의 비밀과 심연에 대한 성찰이다. 그녀의 시에는 근원에 대한 질문,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비의에 관한 사색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 시인은 사물의 보이지 않는 심연, 존재의 고독, 죽음이 환기시키는 적막감 등을 절제된 언어로 담아내려 한다. 당신과 나의 한 순간의 스침, 그 인연조차도 우주적 만남이자 천문학적 겹침이기에 그것은 생의 징표이자 크나큰 사건일 수 있다. 그러기에 시인은 불교적 연기설과 천문학적 우주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존재와 죽음을 성찰한다. 따라서 그녀의 시에 나타나는 대상의 내면은 곧 시인의 내면이며, 적막의 풍경들은 시인의 적막한 내면의 외화인 셈이다. 그녀의 많은 시가 옛 시가들의 음률이나 수묵화의 명암, 고택의 깊은 멋과 향기, 신비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시인의 이러한 내적 기질 때문이다. 그녀에게 세계는 비밀을 숨긴 상징의 숲이며 그녀는 그 숲의 심연을 바닥까지 파헤쳐 보려 한다.

삶이 힘들고 번뇌에 사로잡힐 때 시적 화자는 자주 숲, 절벽, 암자, 극지의 장소, 고지대, 하늘, 우주 등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는 시인이 현재보다 더 높은 경지, 높은 차원으로 자신을 이행시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즉 시적 자아의 우주로의 이동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의 근원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사색하고 관조하려는 행위로, 말을 통해 말이 없는 침묵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그녀의 시 전반에 죽음의 검은색 이미지와 침묵의 여백이 깊게 자리하는 것은 자아의 이런 욕망 때문이리라. 이 욕망이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과 관조를 낳고, 인간존재에 대한 우주적 성찰을 낳는다. 그녀의 시세계를 시집별로 간략히 살펴본다.

첫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96)에서 시인은 불안에 시달리는 자의 눈과 마음에 비친 대상들을 특유의 섬세하고 아픈 이미지로 포착하여 제시한다. 하지만 그녀의 시세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붉은 山 - 조용미(曺容美 1962~ )

산을 보았다

뼈만 남아 앙상한 늙은 개의 등가죽을 한

사막의 砂丘들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의 산

고행승의 얼굴에 새겨진 골 깊은 주름,

그곳 죽음의 계곡 어두운 결을 따라

바람이 새겨놓은 움푹 들어가고 나온 자리마다

죽음과 삶이 몸을 섞는 곳

번뇌에도 저런 빗살무늬토기의 결이 생길까

부드럽고 잔인한 사구들 위로

하마탄*은 살갗을 파고들며 불어온다

번뇌에 번뇌를 거듭하며

살갗이 염전의 소금처럼 오그라들어 빛을 발하면

하나의 사구가 넘지 못할 거대한 산을 이루기도 하는 곳,

절 한 채 들어서지 못하는

붉은 山

*사막에 부는 바람
것은 두 번째 시집 『일만마리물고기가산을 날아오르다』(2000)부터다. 이 두 번째 시집을 통해 시인은 산, 사찰, 나무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사물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본격적으로 성찰한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길이고 길 이미지는 안주할 수 없는 시적 자아의 고립 또는 방황,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길 위에서 시인은 대상의 부재와 직면하고 허무에 사로잡히곤 한다.

위에 소개된 「붉은 山」은 이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시로 비유적 구절들이 병렬되면서 생의 근원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붉은 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죽음의 장소이지만 거기서 시인은 고통 속에서 구도의 길을 찾는 고행승의 모습도 읽어낸다. 즉 붉은 산은 죽음과 삶, 어둠과 빛이 양립하면서 하나의 몸으로 공존하는 우리들 생의 비유이자 상징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2004)은 시인 스스로 자아의 내부로 몰입하여 바깥을 바라본 시집이다. 하지만 바깥의 풍경은 시인의 안이 짙게 투명된 모습이므로 바깥 자체일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런 시선 이동을 통해 시인은 삶이 숨기고 있는 불안과 죽음의 풍경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삶이란 얇은 비밀봉지처럼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것이며, 우린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명왕성처럼 고독한 존재임을 자각시킨다. 또한 시인은 자신을 두꺼운 삼베옷 치마를 입은 자로 객관화하여 삶과 죽음의 본질을 탐구한다.

네 번째 시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2007)은 가시적 사물의 세계에서 심연을 응시한 시집이다. 적막과 고독 속에서 바깥과의 적절한 관계 맺음을 통해 자아와 세계를 새롭게 관조하고 성찰한다. 나아가 다섯 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2011)을 통해 시인은 색(色)과 음(音)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사물과 말은 인간의 눈이나 귀로 포착할 수 없는 음지의 영역을 거느리고 있는데, 시인은 이 숨어 있는 영역을 드러내려 한다. 빛과 어둠의 세계를 묵(默)과 현(玄), 즉 묵의 농담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조용미는 빛의 풍경과 어둠의 풍경, 그 풍경들이 거느린 색을 통해 삶의 비의와 고독을 성찰한다. 생과 존재의 사색(思索/死色) 여정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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