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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서울의 예수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8.07.05 17:32:26
  • 최종수정2018.07.05 17:32:26
[충북일보] 정호승은 비극적 현실세계를 투시하여 현대인이 잃어버린 사랑을 농밀한 서정으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특히 1970∼1980년대 초기 작품들은 비극을 낳는 시대의 압제와 어둠을 직시하여 민중들이 처한 삶의 질곡과 상처를 결 고운 서정으로 풀어냈다. 시편마다 민초들을 위로하고 연민하는 시인의 눈길이 애잔하게 스미어 있어서 공감과 울림을 자아낸다. 이데올로기와 정치세력에 희생되는 민초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시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연민하고 아파한다.

초기의 대표작 「서울의 예수」에서 시인은 민중들이 겪고 있는 삶의 애환을 가슴 깊이 아파하면서 그들의 상처 난 영혼을 위무하고 달랜다.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해 서대문 구치소에 기대어 울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된 서울의 예수는 그 시대의 자화상이다. 서대문 형무소는 시대의 비극을 대리하는 상징 공간이며,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른 예수는 사막화된 도시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갈망하고 사람다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내면 초상이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하는 자책과 반성은 정치권력과 물적 자본에 의해 우상화된 신성(神性)에 대한 인간적 고백으로 들린다.

압제와 고통의 시대를 지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정호승의 시세계는 인생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적 사색이 우세해진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외롭고 고독하며, 이 결핍과 부재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미완으로 유예된다. 이 사랑의 불가능성 때문에 인간은 더욱 고독해지고 허무의 세계, 죽음의 심연으로 기울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핀 수선화 같은 존재, 불모의 사랑을 앓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 사는 세상에 서린 슬픔, 인간의 외로움을 따듯한 서정의 색조로 담아낸다. 시 「수선화에게」에서 그는 노래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함기석 시인

서울의 예수 - 정호승(鄭浩承 1950∼ )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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