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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8.06 10:39:23
  • 최종수정2015.08.06 10:39:23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1947 - )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 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를 보면 깊이 숨겨둔 여자의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일까. 심장이 뛰듯 욕망이 경쾌하게 점핑한다. 여동생이었다가 나팔꽃이었다가 꿈틀거리는 벌레이었다가 마침내 긴 잠 드는 누에가 되고 싶어 한다. 훤칠한 키에 가슴이 넓고 등과 어깨가 든든한 남자. 느티나무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끄떡도 하지 않는 남자. 눈썹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남자.

이런 남자를 꿈꿔보지 않은 여자가 어디 있으리.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그저 다 받아주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언제나 등과 어깨를 내어주며 속삭여주는, 수호천사처럼 그림자로 따라와 든든하게 지켜주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이런 남자가 한 생애 동안 한 번은 꼭 나타나리라는 꿈을 꾸면서 여자들은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오빠처럼 기대고 싶고, 나팔꽃이 되어 기어오르고 싶고, 나뭇잎처럼 가벼워지고 싶고, 허물을 벗기 위해 긴 잠을 준비하는 누에가 되어 야금야금 갉아먹고 싶은 남자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 주위에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데 사는 게 외롭다고들 말한다. 그런 남자가 숨어 있어서 삶이 외로운 게 아닐까. 외로워서 꿈이라도 꾸어보는 것이 아닐까. 외롭지만 뭇사람들은 속 깊은 꿈의 발설을 꺼려한다. 하지만 시인은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발설한다. 뭇사람의 거울이 되는 통쾌한 발설이다.

언젠가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약국 앞에 세워놓은 젊은 남자 배우를 둟어지게 쳐다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까닭을 몰랐더니 이제야 알 것 같다. 할머니는 여자로 서 있었던 거다.

/ 권희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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