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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6.13 17:22:46
  • 최종수정2019.06.13 17:22:46
[충북일보] 초여름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비가 내리면 시리고 앙상했던 마음이 포근해지며 스르르 그리움을 불러온다. 남편이 비도 오는데 점심은 부치기나 부쳐 먹자고 한다. 부모님도 부침개를 좋아하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만들어 가족들이 즐겁게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부침개 부칠 때 나는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노릇노릇하게 익어 젓가락이 저절로 가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사람의 입맛을 자극하게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우울해지기 쉬운데 비 오는 날에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우울한 기분을 내려준다고 한다. 비 오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맛이 바로 부침개다.

여름비의 빗방울이 꽃잎을 떨어뜨리고 푸른빛을 더 환하게 하다가 어느 순간 소낙비를 데려올 것 같다. 때론 빗방울이 꽃대를 잡아 흔들다 꽃잎에게 얼굴 붉히면서 간지러움에 한들한들 춤을 추는 것 같다. 푸른 이파리 위에 톡톡 튀기다 동그라미 그리며 쪼르르 미끄럼 탄다.

비오는 날이면 정구지, 김치 파전을 부친다. 부치기와 술을 앞에 두고 옛 친구와 마주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우리의 우정과 추억이 그리워서다. 부치기를 먹을 때마다 6·25전쟁을 겪은 생각이 난다. 피난 가서 어머니가 부치기 장사를 하여 먹고 살았던 서럽게 쌓인 추억이 영상되어 가슴을 에인다.

기관장들 가족은 무조건 죽인다는 풍문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미숫가루, 쌀 몇 되박을 짊어지고 포성에 놀라 무작정 신작로 따라 남쪽으로 떠나던 처참했던 피난생활이었다. 먼저 떠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우리 식구는 어머니 얼굴이 뚱뚱 붓고 잘 먹지도 걷지 못하고, 언니 동생도 병든 상태였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대구 피난민 수용소에서 아버지와 극적인 상봉이 이뤄졌다. 겨우 안심은 되었으나 밤마다 박격포탄이 앞길, 옆집으로 떨어져 다시 밀양으로 떠나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미군부대 옆 길가 모퉁이 집 헛간을 얻어 거지 아닌 거지생활이 시작됐다. 어머니가 헛간에 가마니 멍석을 깔아 방같이 꾸미었다. 문 앞에 큰 돌과 깡통굴뚝과 흙으로 아궁이를 만들고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불을 때서 부치기 장사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무토막을 구해오고 나와 언니는 정구지(부추)밭에 가서 다듬어 주고 정구지를 얻어오고 파, 호박, 나물 등을 사 왔다. 어떤 날은 깡통을 들고 먼 마을까지 가서 간장, 고추장, 된장을 얻으러 갔다가 쫓겨나기가 일수였다.

부치기는 화력이 세야하고 달구어진 두껍고 넓은 무쇠 번철에 부쳐야 전의 제 맛을 낸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아 부치기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 모두 가난한 피난민이고 청주 피난민이 부치기 장사를 한다고 가엾게 여겨 찾아와 막걸리와 부치기를 팔아주어 먹고 살았다. 장마가 지든지 비가 오는 날은 부치기가 남아 저녁 아침 점심에 끼니를 때웠다. 배가 고파서 눈물에 얼룩진 부침개로 한 끼씩을 대신 했다. 부치기는 피난생활로 살 수 있었던 우리집의 유일한 생활이었다. 수복 후 돌아가시는 날까지 우리 집은 골목 사랑방으로 고모, 외숙모, 언니, 아주머니들이 부치기 부쳐 먹으며 웃음과 정의 보금자리로 가난을 잊고 살아가셨다.

전쟁으로 집을 잃고, 가족이 포탄에 쓰러져 죽어갔고, 피 흘려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인생의 꽃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그 얼마나 죽어갔던가. 6·25전쟁으로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형제가 죽어 눈물겨운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온 그 아픔을 요즘 젊은이들은 알리가 없다.

추운 날 점심 끼니로 구어 먹던 김치부침개. 이제는 파릇파릇 색깔도 향도 맛도 좋은 미나리 부치기, 호박 부치기, 고추장 부치기, 해물 파전 등 넣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다양하다. 묵은지 맛에 냉이, 쑥의 향긋함에 쫄깃하게 씹히는 오징어 맛까지 뜨끈한 부침개 한 쪽…. 부치기 부치는 소리와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집안에 퍼지면서 온 가족이 모여 맛있게 먹는다.

피난살이서 부침개 부치는 어머니 모습이 가물가물 떠오르고 6·25전쟁 때의 피난생활의 애환과 아픔이 아직도 가슴을 적신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살아온 세월만큼 두툼한 부치기를 부쳐 막걸리를 앞에 두고 남편과 마주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반추하며 6·25전쟁의 아련한 슬픔을 회상한다.

손찬국

푸른솔문학 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지역사회 교육협의회 부회장

국민훈장동백장

공저 '은빛여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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