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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어머니의 유품

  • 웹출고시간2018.05.10 17:40:15
  • 최종수정2018.06.07 10:27:13
[충북일보] 하얀 목련 꽃잎이 화사하게 핀 골목길을 돌아서니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어머니. 이렇게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이름 언제나 그리운 친정어머님이 다. 둘째 동생 내외가 누나 생일 축하한다며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동생의 마음이 고맙다. 올케가 선물을 드린다며 손수건에 싼 물건을 건네준다. 하얀 불로치와 땅콩만한 연한 옥비취색 알들이 고무줄에 꿰어 있는 늘어났다 줄어드는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팔찌였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팔찌다. 올케가 버리지 않고 지금껏 간직하고 있었다니 고맙고 놀라웠다.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클 것 같아 보관하였다가 준다고 한다. 불로치와 고무줄에 매달린 팔찌를 차보니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져 온다. 팔찌가 오죽 차고 싶었으면 자식들에게 사 달라는 말을 못 하시고, 시장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싸구려를 샀을까· 어느 날 친정엘 들렸더니 "얘, 이 팔찌 예쁘지" 하시며 자랑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무심코 지나친 일이었다.

어머니! 순간 울컥 목이 메여온다. 구십 오세의 노쇠한 몸인데도 여자이기에 그렇게 팔찌와 불로치를 갖고 싶어 하시었는데…. 옷가게에서 이삼 십만 원하는 재킷을 외상으로 사 오셔 입어 보시면서 "어때 색도 잘 어울리지" 하시면 "엄마, 며느리 들이 돈도 없는데 외상이라니 욕해요." 하며, 어머니를 무시하였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되살아나며 가슴이 아프다.

그 흔한 귀금속이나 패물도, 고가의 옷들도 오직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야하는 엄마로 책임을 다하는 것만 생각했었다. 나도 유행도 멋도 모르고 근검 절약정신으로 살아왔다. 액세서리들, 다이아몬드, 반지, 금팔찌, 귀걸이 같은 사치를 모르고 살아왔었다. 내 자식만 생각했지,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적이 없었다.

어머니도 여자라 얼마나 갖고 싶고 사고 싶으셨을까. 돈도 없으시면서 외상으로 사시는 마음을…. 자식들 중 나는 어머니의 아픈 생이 손가락이었다. 항상 엄한 시어머님 모시고 무관심한 남편 내조하며, 자식교육과 직장의 장으로 바빠서 배부르게 먹지도 못하고 출퇴근 했었다.

머리가 다 빠지도록 밤낮 없이 동분서주하는 딸이 늘 불쌍하다고, 어머니는 항상 걱정이 태산이셨다. 사직동 분수대 옆 도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갈림길의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며 고통을 받았을 때도, 학교에서 갑자기 어지러워 쓰러져 병원에 실려 왔을 때도, 눈을 떠 보면 손잡고 눈물지으시던 어머님.

근심어려 바라보시던 어머니 얼굴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힘들지, 고생했다" 하시며 "자식 생각하여 건강하게 살아야지, 많이 먹어라" 하며

숟가락을 쥐어 주시던 어머님이시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면 딸이 안쓰러워 걱정하며

"밥은 제때 먹고 다녀라. 일찍 자거라" 하시면

"내가 애기야" 하며 어머니께 딴청을 부리던 딸이었다. 날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걷기도 힘들었던 허리보다 더 아픈 어머님의 가슴속에는 미운 우리 새끼들마저 아픈 손가락들이었다. 죽음 앞에 멈춰버린 어머님의 인생 시계를 다시 돌려드리지 못했다. 심장 소리가 손 마차 바퀴 돌아가듯 드르륵 푸드드륵 푹, 가래 끓는 거친 숨소리. 생기 잃은 어머니에게 딸은 폭풍의 잔소리만을 했었다.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절이다 쑤시다 말하면, 냉정히 대하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직장에 다니고 바쁘다는 핑계로 돈만 몇 푼 드리며 병원 가보시라고 퉁명스럽게 말씀 드렸었다. 어머니의 아픈 몸을 주물러 드리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상냥하게 사랑으로 보살펴 드리지 못 했다.

"어머니를, 하늘나라 아버지께 고통 없이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요." 라고 말씀드렸던 불효한 말들이 하나하나 가시가 되어 되새김질하며 가슴을 아프게 한다.·이제 봄꽃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세월이 가면 잊힐 줄 알았는데 어머님의 향기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과 마음도 점점 잊혀 져 간다. 어머니의 유품 선물들을 받고 만져보니 더욱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어머니가 그립던 날, 친정집이 있었던 성안길 옛집을 찾아가 텅 빈 흔적들만 바라보며 퇴색된 대문 시멘트 기둥을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짊어 지셨던 무거운 짐과 무심했던 미안함과 감사했던 지난날들…. 자신의 모든 것 다 내어주고 더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해하시며 늘 남편 몫의 그림자로 살아가시던 어머님. 세월과 추억이 쌓인 어머니의 자상하신 모습은 이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머니의 유품 팔찌와 불로치를 손 안에 감싸니 사랑에 가슴이 뭉클 해진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손찬국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학회 회원

초등학교교장 정년퇴임

충북지역교육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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