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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얘들아, 나랑 친구하자

  • 웹출고시간2016.07.07 17:23:20
  • 최종수정2016.07.07 17:23:20
나는 큰아들과 3대가 한집에 사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께서 그랬던 것처럼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며 손녀가 인사를 하면, 반가움에 손녀를 덥석 안아보기도 한다.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하고 물어보면 대뜸 "그건 왜 물어?" 라고 친구처럼 반말로 받는다. 어느 때는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싫다고 하지만 곧 태도가 변하여 아양을 떨곤 한다. 이 아양에 넘어가지 않을 할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때로는 할아버지 손잡고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사 달라고 보채는 손녀가 마냥 귀엽고 친구처럼 즐겁다.
그런데 분가해서 사는 손자 녀석들과는 친구는커녕 소통의 부재로 답답하다. 딸과 작은아들은 대전에 사는데 모두 아들만 두었다. 머슴애들이라 그런지 손녀처럼 다정하지 않다. 어릴 적에는 잘 따랐는데 고학년이 되더니 무뚝뚝해 졌다. 최근엔 집에 오면 큰절을 하니 대견하다. 나는 더 가까이하고 싶어 말을 걸며 접근을 시도해보지만 좀처럼 자분자분 대하지 않는다. 떨어져 살고 애교가 부족해서 그런지 사랑이 가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하다.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 가족이거늘, 생각해 보니 손자들과 함께한 추억이 별로 없다. 이런 현상이 어찌 우리 집 만의 일이겠는가. 핵가족문화에서 오는 문제라 생각한다.

하루는 라디오를 청취하고 있는데, 진행자가 하는 말이 '조손(祖孫)사이는 친구(親舊)'라는 말을 했다. 말뜻을 이해는 하지만, 방송을 들으면서 그것은 할아버지 된 자들의 일방적인 짝사랑이고 바람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 손녀처럼 마음을 나누며 친구랑 놀 듯 장난도 치려면 오랜 시간 함께 하기 전엔 쉬운 일이 아니다. 명절이나 큰 일이 있을 때만 만나니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친구처럼 지내기는 힘들다. 분가해서 사는 손자들과 나 사이처럼 어려워하고 지내기가 일쑤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와 나누던 정담을 떠올릴 적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뭉클해온다. 조손(祖孫)사이는 친구(親舊)라는 말을 나의 할아버지께서 들으셨다면 무어라 반응하셨을까. "할아버지와 손자가 친구라고? 이런… 고얀 놈!" 하고 호통을 치시진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무릎에 앉아 귀염 받던 기억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할아버지는 무척 근엄하였다. 나를 사랑하지만 늘 엄하신 분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큰소리로 할아버지! 하면서 집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을 열어젖히며 마루로 나오시곤 했다. 때로는 학교에서 배운 공부며 학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세히 묻기도 하셨다. 그런 다음에 막내손자 배고프니 먹을 것 갖다 주라고 할머니께 명령처럼 말씀하시곤 했었다.

할머니께서는 내 손을 잡고 사랑방 부엌으로 가시어 고래 잿불에 묻어 두었던 감자를 꺼내어 호호 불며 까서 내 손에 들려주시며 "우리 강아지 학교에서 힘들었지?" 하시며 엉덩이를 툭툭 치시곤 했다. 이 정겨운 풍경은 우리 집이 시골이었고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여러 형제가 북적대며 살던 그때 나는 후견인이 많은 아이였다. 밖에서도 언제나 으쓱대며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맘껏 기를 펴고 살았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친구라…. 그 말이 정겹고 듣기가 좋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 뒤에서 지팡이 잡고 거닐던 그때 그 모습, 학교에서 있었던 화제로 나누던 이야기며, 할머니와 함께 아궁이에서 구운 감자 꺼내 먹던 일, 공부 많이 해라 이르시던 훈계를 받으며 함께 나누던 정. 이런 정을 핵가족 화되고 전자 문명 속에 사는 내 손자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손자들과도 친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자주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 손녀와 그리 지내는 것만도 복인데 무슨 욕심을 내랴.

돈으로 마음을 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손자들의 마음을 사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을 어찌 돈으로 사랴. 때로는 사랑스러워 돈을 줘보기도 하지만 손자들에 태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 좋은 상급학교에 가는 것에 목표를 두고 공부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나와 같이 하는 시간이 너무 짧으니 할아버지의 정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내가 할아버지를 그리듯 손자들이 나에 대한 아름다운추억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신문식 수필가

충북대수필창작 회원

수필작품공모 우수상

한국문인 시등단

충북은행지점장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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