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에는 광활한 대륙과 태고의 시간을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정기와 기품이 장중하게 펼쳐져 있다. 비장미가 서린 지사적 어조와 남성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1~3연에서는 태초를 포함한 과거, 4연에서는 현재, 5연에서는 미래가 웅혼하게 펼쳐진다. 하늘이 처음 열리던 태고의 광야에서 닭 우는 소리는 어두운 밤을 밀어내고 새벽의 도래를 알리는 첫 신호이다. 이 닭 울음소리의 존재 유무는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조차도 이곳을 범(犯)하진 못하였으리라 생각하는 시인의 결기 서린 마음이다. 이 결의에 찬 순수한 마음이 혹한의 시련을 견디고 피어나 진한 향기를 내뿜는 매화 이미지로 나타난다. 매화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려는 시적 자아의 의자가 담보된 존재로 비록 지금은 매화향기 아득하지만 언젠가 이 적막한 광야에 빛이 도래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 시인의 희망이 내포되어 있다. 이 희망이 천고(千古)의 시간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이미지로 승격되어 등장한다. 즉 초인(超人)은 시인의 열망과 의지가 투영된 자아이자 우리 백의민족의 불멸의 혼(魂)인 셈이다. 이 초인이 빛이 도래한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는 노래는 실로 광대하고 심원하고 진한 감동을 전한다.
광야 / 이육사(李陸史 1904~1944)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