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전해주는 홍매화의 본성은 어떠한가. 흙 있다고 아무데나 피는 게 아니라 화엄사 마당에만 피고, 비로자나불을 봐야 뿌리를 내리는 홍매화이다. 즉 청정도량 마당가에서나 꽃을 피워내고 우주의 주재자인 청정법신(淸淨法身)을 봐야 비로소 뿌리 내리는 홍매화이다. 어디 그뿐인가. 가볍게 혹은 헤프게 속내를 보이지 않고, 성급하게 열매를 맺고자 아니하고 그저 꽃으로 만족하는 홍매화이다. 그러기에 홍매화의 겨울나기는 고고하고 존엄해 보인다.
마치 경전과도 같은 홍매화 한 떨기에 비하면, 나는 먼지처럼 가볍고 진흙처럼 세속적이고 속물처럼 때가 묻어 있다. 아무데서나 몸을 굴리고, 아무 때나 속내를 보이고 알몸까지 보여 정말 더럽혀져 있다. 욕망에 사로잡혀 꽃이 지기도 전에 무성한 열매를 맺고자 한다. 삶의 순간순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위해 현재는 점을 찍어가며 살고 있지 아니한가.
모든 시가 그렇듯이 이 시도 시인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시 속의 '당신'이나 '화자'가 하는 말은 결국은 독자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화자처럼 보내고 있지는 아니한가. 그렇다면 화자가 홍매화란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듯 우리도 그 거울에 우리의 얼굴을 한번쯤 비춰봄이 어떨까.
/ 권희돈 시인
홍매화 겨울나기 - 최영철(1956~)
흙 있다고 물 있다고 아무데나 피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 구례 땅 화엄사 마당에만 핀다고 하는데
대웅전 비로자나불 봐야 뿌리를 내린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데나 막 몸을 부린 것 같아
그때 당신이 한겨울 가지 어루만지며
뭐라고 하셨는지
따뜻한 햇살 내린다고
단비 적신다고
아무데나 제 속내 보이지 않는다는데
꽃만 피었다 갈 뿐
열매 같은 건 맺을 생각도 않는다는데
나는 정말 아무데나 내 알몸 보여주고 온 것 같아
매화 한 떨기가 알아버린 육체의 경지를
나 이렇게 오래 더러워졌는데도
도무지 알 수 없을 것 같아
수많은 잎 매달고 언제까지 무성해지려는 나
열매 맺지 않으려고
잎 나기도 전에 꽃부터 피워 올리는
홍매화 겨울나기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