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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1.24 17:14:08
  • 최종수정2019.01.24 17:14:08
[충북일보] 날씨가 쌀쌀하다. 절을 지나 북가치로 오르는 겨울 숲은 고요하다. 어쩌다 바람이 불어와 아직 떨구지 못하고 매달린 잎사귀를 흔들 뿐. 작은 새가 푸르륵 날아간 나뭇가지는 흔들리다가는 곧 멈춘다. 여름 한나절에 그리도 요란스레 지저귀던 새들은 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숲 속을 아롱다롱 수놓았던 그 이름 모를 꽃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썩 베면 푸른 피가 솟아날 것 같은 등걸은 시커멓게 갈라지고 터진 채, 찬 바람을 맞고 서있다. 하늘을 가렸던 잎새들은 물기와 푸름을 대지로 되돌리고는, 지금은 말라서 바스락 거리는 몸으로 땅위에 뒹군다. 어둑한 냉기가 어린 숲은 텅 비어 있다. 여름 내내 녹음에 숨기었던 숲속 비밀이 이제 훤히 드러나 있다. 바위 틈새로 마를 날 없이 흐르던 여울물은 하얀 얼음 속에 물길을 감추고, 뒷산이 지은 해 그림자가 골짜기를 지나 앞산 꼭두배기로 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한 겨울이다. 저녁나절의 숲은 어둡고 스산하다. 옅은 먹물로 붓질한 듯한 숲속 오솔길을 홀로 오르고 있다. 겨울 숲에서 삶을 돌아본다. 칠십 줄로 접어드는 내 삶도 겨울의 숲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가을을 지나온 숲처럼, 나의 세상살이도 예까지 왔다.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채 백년도 못 되는 세상살이를 하다가, 다시 그윽한 그곳으로 돌아간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나그네의 삶은 자유롭다. 정처가 없어서 그러하리. 매인 곳이 없고, 목적한 바가 없어서 그러하리. 당나라 시인 이백은 무릇 천지라는 '세상'은 모든 만물이 잠시 쉬어 가는 여관이고, 광음이라는 '시간'은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하면서, 인생길이 꿈결 같다고 하였다.(夫天地者 萬物之逆旅·光陰者 百代之過客 而浮生若夢)

197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닐 때 클래식을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나훈아 노래를 부를 때, 그는 통키타를 치며 음악 감상실을 드나들었다. 그는 외톨이었고, 늘 우울했었다. 그가 좋아했던 곡이 슈벨트의 가곡 '겨울나그네'였다. 다리를 절었던 그 친구가 왜 슈벨트의 '겨울나그네'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겨울 들판으로 길을 떠나면서, 실연의 아픔을 승화한 그 슬픈 노래가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슈벨트의 비극적 삶이 그에게 어떤 울림이 있었던 건지. 사실 슈벨트는 작은 키와 못생긴 외모로, 늘 열등감 속에 살았고, 그의 사랑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지독한 가난과 허무함으로 윤락가를 전전하던 그는 돌이킬 수 없는 병, 매독에 걸렸다. '겨울나그네'를 완성하고 그 이듬해,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슈베르트 자신이 눈보라 치는 겨울, 사랑을 잃고 죽음을 향해 방황하던 그 겨울 나그네는 아니었을까?

한 참 숲을 오르다보니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작고 가냘픈 새 한 마리가 하늘 끝으로 보이는 잔가지 끝에서 울고 있다. 이름 모를 새는, '겨울나그네' 열두 번 째 가곡 '고독'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였다. 찬바람은 피아노 선율이 되어 윙윙 거리고 있을 뿐….

전나무 가지위에 미풍이 불 때

어두운 구름이 청명한 하늘을 가로지르듯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나의 길을 가네

즐거운 삶을 지나 외롭고 쓸쓸하게

('겨울나그네' 12곡 고독)

아린 가슴 속을 후비는 듯한 애절한 소리로 새가 울고 있다. 바람이 명주실 같은 소리를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흔들고 있다. 살랑거리는 잎새처럼, 바르르 떨고 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다. 추운 겨울에 나그네가 되어 숲을 오르는 내 허전한 가슴에 쓸쓸함이 안개 되어 흐른다. 숲은 아까보다 더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최재우

-중·고등학교 교장 정년퇴직

-푸른솔문학 수필 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1회 충북대수필문학상 대상

-전국문화원연합회 향토사논문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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