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의 시는 대체로 대상에 대한 차가운 응시, 섬세한 해부, 종합적이고 다층적인 해석, 상상과 사유의 적극적 확장이라는 4단계를 거쳐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풍경과 현상, 삶과 죽음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인식의 충격을 준다. 그에게 삶은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이고, 삶은 불안과 좌절로 점철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환희와 열락의 순간들이 있다. 김기택 시의 균형은 이 양자 사이의 길항에서 싹튼다. 따라서 그는 삶과 죽음을 양쪽에 태운 채 균형을 잡으려는 불안한 시소, 삶의 희망과 죽음의 공포, 몸의 유한성과 정신의 무한성,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생각 많은 그네다.
그에게 시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종의 생각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직접 진술하기보다 풍경으로 대리한다. 즉 그에게 시는 개념이기 이전에 감각의 몸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그는 인간의 몸, 몸이 속한 자연과 세계에 접근한다. 몸의 생리적 본능과 생명욕구, 죽음과 삶의 대칭구도와 균형 등에 관심을 기울여 세계를 중층적으로 사유한다. 그러니 그에게 사물들로 구성된 세계는 거대한 몸일 수밖에 없다. 그의 시속에 태아, 머리카락, 자궁, 혀 등 몸과 관련된 소재들, 소나 개처럼 사람과 함께 사는 가축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해부가 곧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부인 셈이다. 그 결과 그의 눈과 손길이 닿는 대상들은 기존의 낡은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존재물로 탈바꿈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반성적 성찰의 시, 인식의 전환을 낳는 발견의 시라 할 수 있다.
'꼽추'는 김기택의 1989년 등단작이다. 불구의 모습으로 구걸하는 지하도 노인을 시인은 냉정한 시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꼽추 - 김기택(金基澤 1957∼ )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슴 등뼈 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