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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1.01 15:40:06
  • 최종수정2018.11.01 15:40:06
[충북일보]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아내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다.

"차사고가 났어요. 빨리 와야겠어요."

"어디서 차가 많이 상했나."하고는 급히 신발을 갈아 신는데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생각났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동안 발은 더디고 아내에게 말을 잘못했음을 알아차렸다.

가을이면 다랑이 논에 누렇게 황금같이 익은 벼를 가족들이 줄을 맞추어 낫으로 벴다. 아이들은 고구마, 단감, 무화과가 간식이었고 아버지는 농주가 간식이었다. 논바닥에 말린 벼를 꼬불꼬불한 논두렁과 산길을 거쳐 집 위 타작마당에 옮겼다. 아버지, 삼촌, 형님은 지게에 지고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오리가족 대이동 같은 모습이 가을 내내 이어졌다. 이렇게 옮긴 볏단은 발로 구르는 탈곡기로 털어 알곡은 말려서 창고로 들어가고 볏짚은 볏짚가리로 보관되어 겨울에 초가집 지붕을 새로 가는 이엉이 되거나 소먹이로 사용되는 귀중한 재산이었다.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살아가는 고향 마을을 어머니는 '돌곰타'(돌이 많은 골짜기 마을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이 '돌곰타'에서도 삼촌들은 마산이나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취직을 하였다. 셋째 삼촌은 성당의 말구(마르타 세례명의 옛말) 할머니가 아들 많은 집의 셋째라 데리고 가서 신부로 만들겠다는 요청도 거절하고 서울로 가서 대기업에 취직을 하였다. 취직한 다음 해에 삼촌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인 일곱살쯤인 어린 조카를 위해 설날에 베구두(운동화)를 사 가지고 왔다.

고무신 한 켤레로 봄부터 겨울을 넘겨야 했던 시절에 귀한 베구두를 신은 나는 발에 로켓을 단 느낌으로 산과 바다를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베구두가 불에도 잘 견디는지, 베구두를 신은 내 발은 불에도 뜨겁지 않은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지(부엌)에 있던 성냥을 가지고 나와서는 타작마당에 쌓아놓은 볏짚가리에 불을 붙였다 꺼보곤 했다. 불을 밟아도 뜨겁지 않은 신발이 너무 좋았다. 고무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조금씩 불씨를 더 키워보기로 하는데 때맞춰 불어온 바람에 불꽃이 확 퍼지면서 베구두로는 불꽃을 잡지 못하고 집채만한 큰 볏짚가리에 불을 내고 말았다.

집을 짓거나 수리를 위해 큰 나무를 베어 껍질를 벗기고 볏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덮어 말리는 곳이 있었다. 놀란 나는 그곳에 숨었다. 순식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벌집을 건드린 양 벌떼같이 물동이를 들고 나르고 바삐 움직이는 것을 나는 직감하고는 큰일을 저질렀음에 어쩔 줄 몰랐다. 그 속에 나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내 가슴에 아직도 새겨져 있다.

어머니는 나를 어떻게 찾았을까? 놀라서 통나무 사이에 숨어있던 나를 어머니는 용케도 찾아서 다시 집의 뒷방에 숨기시고는 나가셨다. 상황이 정리되고 난 후 저녁 식사 때에 어머니는 나를 마루로 데리고 나갔다. 아버지의 야단을 각오하였는데 의외로 편안한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놀랐을 것이다. 불 다 껐으니 밥 먹어라." 나중에 뒤통수로 들은 말은 "놀란 애를 야단치면 안 된다."였다. 다음날 산보다 더 커 보이는 시커멓게 탄 볏짚가리를 보고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나는 사무실에서 퇴근할 때 전기 스위치를 껐는지 꼭 확인하는 습관이 있고, 집에서는 주방 가스렌지에 불을 켜놓고 다른 볼일을 잘 보는 아내를 그 때마다 조심하라고 타박하는데, 이는 볏짚가리에 불을 낸 경험 때문일 것이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사고현장으로 가면서 내가 아내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자동차 상한 것을 물을 것이 아니라 아내가 얼마나 다쳤는지를 물었어야지.

베구두의 교훈을 기억하였다. 그 때 부모님은 어떤 것보다 놀란 자식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의연한 대처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내 삶속에 녹아 있었다.

교차로에서 상대편 차가 우리 차의 뒤를 받자 아내는 급하게 핸들이 틀려져 차가 전봇대와 도로변에 주차한 차까지 받았다. 우리 차는 본네트와 왼쪽 앞뒤 도어가 박살이 나버렸다. 아내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본인의 잘못이 없음을 설명하는 아내에게 나는 "많이 놀랐지·, 다친 곳은 없나·" 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후 아내는 "당신은 큰 일이 있으면 오히려 더 차분하고 관대하더라."라고 했다.

어릴적부터 부모님께 물려 받은 귀한 유산이다.

전민호

충북대학교 도서관 근무

충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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