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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그때는 몰랐다

  • 웹출고시간2018.05.24 17:28:14
  • 최종수정2018.06.07 10:27:01
[충북일보] 온종일 녹우(綠雨)가 흩뿌린다. 창밖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무심코 바라보노라니 아파트 마당에 삼삼오오 무리지어 등교하는 아이들 모습이 눈에 띈다. 먼발치서 봐도 초등학교 1, 2학년 또래의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이 쓰고 있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색 우산이 정원의 푸르른 신록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봄꽃처럼 곱다.

요즘은 우산도 패션의 도구인듯 고급 제품이 생산된다. 실용 및 미적 감각의 제품들을 선호하는 소비자 취향 때문일 것이다. 고운 색상의 우산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어린 날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싸아 하다.

초등학교 2학년, 봄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어느 봄날이었다. 수업을 마친 후 친구랑 함께 우산을 쓰고 학교를 나설 때이다. 학교 정문 앞에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 걸음에 달려갔다. 어머닌 화안한 웃음을 입가에 지으며 당신이 쓰고 온 우산을 내게 건네었다. 그리곤 당신은 머리에 흰 무명수건 만 쓴 채 비를 맞으며 빗속을 걸었다.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워 우산을 같이 쓰자고 말했지만 어머닌, "네 한 몸 가리기도 부족한데 나까지 쓸 수 없다."라고 하며 한사코 함께 우산 쓰기를 거절하였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왜· 우리 집은 늘 우산이 부족할까· 의아했다. 뿐만 아니라 그날 어머니는 비를 맞아도 어른이라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으니 얼마나 철부지였던가. 그 때 쏟아지는 차디찬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묵묵히 걷는 어머니의 몸에서 젖은 옷을 뚫고 피어오르는 훈김을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았던가. 학교서 집까지 2키로 남짓한 길을 걸으며 싸늘한 빗줄기를 온 몸으로 맞았던 어머니는 얼마나 심한 한기를 느꼈을까·

어느 여름날 새벽 부엌에서 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잠자리서 일어나 부엌으로 난 소창(小窓)을 열었다. 어머닌 아궁이에서 내뿜는 매캐한 연기가 매운 듯 연신 주먹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리곤 한 쪽 발로 아궁이에 땔감을 밀어 넣고 한 쪽 손으론 자배기에 보리쌀을 씻고 있었다. 그 날 아침 밥상엔 전에 없던 호박잎에 싸서 구운 고등어구이도 올랐다. 어디 이뿐이랴. 상추 겉절이도 올라왔다. 전 날 어머니께서 남의 혼수 이불을 바느질 해주고 받은 삯으로 사온 양식과 반찬이었다.

매끼니 밥상을 대할 때마다 어머니 손길만 닿으면 무엇이든 맛난 음식으로 둔갑 하는 줄로만 알았다. 밥상이라고 해야 새카만 꽁보리밥, 혹은 멀건 죽, 된장찌개, 열무김치, 나물 반찬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시절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위에 올랐던 반찬들은 나의 솜씨로는 그 맛을 재현할 수 없는 구수한 맛인 추억의 음식들이다.

상추 및 배추 겉절이만 하여도 그렇다. 어머닌 어떻게 그리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의 상추와 배추 겉절이를 만들 수 있었을까. 풍족하지 못한 집안 살림 탓에 변변한 양념도 없었다. 단내 나는 먹물 같은 간장, 고춧가루, 마늘 몇 조각 으깨어 넣은 게 양념의 전부이련만 어머니가 해주는 상추와 배추 겉절이 한 가지 만으로도 밥 한 공기 너끈히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어머니는 열무김치를 담근다. 텃밭에서 뽑은 열무를 다듬어 풋내나지 않게 씻은 후 풋고추 몇 개 송송 썰어 넣고 보리쌀 물과 밀가루 풀물을 섞어 어머닌 열무김치를 담그곤 하였다.

나는 어떤가. 양파, 배, 붉은 고추, 생강, 마늘, 파프리카 등의 김치 맛을 극대화 시킨다는 온갖 재료들을 믹서에 갈아, 다시마 우려낸 물로 쑨 밀가루 풀물로 열무김치를 담그곤 한다. 하지만 내가 담근 김치 맛은 어머니의 손맛을 도저히 따를 수가 없다.

요즘처럼 제대로 된 조리기구도 구비된 양념도 또한 양식도 귀했던 그 시절, 어머닌 어떻게 무슨 비법으로 그리 맛난 음식을 우리에게 요리해주었는지…. 우린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심신을 키웠다. 또한 어머닌 독서를 습관화 시켜 우리의 영혼도 살찌우려 하였다. 양식은 못 구해도 우리에게 동화책은 사주던 어머니다. 이 때 평소 책 읽기를 게을리 한다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어린 마음엔 참으로 야속하기만 하였다. 책 속에서 얻는 간접 경험이 인생을 완성 시킨다는 진리를 어머닌 우리들로 하여금 독서를 통하여 얻길 바람 했던 것을 그 때는 몰랐다.

지난날 어머니는 당신의 안위보다 자식을 더 걱정하였고, 당신의 헌신과 희생으로 자식들을 양육하는 것을 삶의 보람이요, 기쁨으로 여겼다.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을 나는 세 딸의 어미가 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이제야 뒤늦게 철이 드나보다.

김혜식

1995년 순수문학 수필 '발등거리 등불'로 등단.

하정 문학 아카데미 원장

아시아 작가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청주 문학상,

제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수필집 '내안의 무늬가 꿈틀거렸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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