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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20.01.30 10:07:59
  • 최종수정2020.01.30 10:07:59
이수명의 시는 미지(未知)와의 만남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생각과 느낌, 새롭고 낯선 초현실적 사건을 경험하는 언어놀이터다. 인간과 사물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통찰한다는 점에서 세계의 존재방식을 그리는 현상학적 지도이자 인식의 해부도(圖)다. 그녀는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시간, 공간, 사물, 현실의 이름들로부터 멀어진다. 대상들과의 밀착을 거부하고 점점 틈을 넓게 벌인다. 기존의 지각, 감각, 기억, 사고를 버리고 정신의 무장해제, 어떤 통념도 가치도 의미도 제거된 황무지 상태가 되려한다.

이수명의 시는 이런 토대 위에서 펼쳐진다. 언어를 다룰 때 그녀는 맨손으로 진흙덩어리를 만지작거리며 노는 영특한 아이와 닮았다. 이 아이는 혼자 놀면서 아무도 만들지 않은 어떤 것, 아직 이 세상에 없는 물건이나 장난감, 어떤 미지의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싶어 한다. 이 모험놀이 발명놀이에 의해 획일화된 세계의 질서는 전복되고 새롭고 낯선 세계, 환각의 풍경들이 탄생한다. 그것이 이수명의 시다.

이수명은 풍경의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응시한다. 외부는 사물들로 구성된 현상 세계로 시인은 하나의 사물이 어떻게 그 사물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으며 다른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생각한다. 해부학 의사처럼 사물들의 고착된 관계를 치환하거나 사물들을 제자리에서 이탈시켜 우리의 관습적 인식에 충격을 가한다. 돌발성, 우연성을 통해 사물들의 고정된 위치와 기능을 역전시킨다. 즉 그녀에게 사물은 단순히 현실에 존재하는 물적 대상을 넘어서서 사고와 상상 속에서 재구성된 오브제이자 새로운 미(美)와 시공을 탄생시키려는 정신의 대리물들이다.

이수명은 사물의 구성요소인 빛, 색채, 음향, 질감, 냄새, 속도, 움직임 등을 자유롭게 조절하여 그 사물과 사물이 놓인 공간을 재탄생시킨다. 즉 그녀에게 사물은 늘 탈주 중인 사물이고, 기존의 역할과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 이수명(1965~ )

왜가리는 줄넘기다.

왜가리는 구덩이다.

왜가리는 목구멍이다.

왜가리는 납치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테이블은 하나다.

테이블은 둘이다.

테이블은 셋이다.

테이블은 숲 속에 놓여 있다.

손을 들고

숲이 출발한다.

테이블은 없다.

테이블 위로 왜가리는 도착한다.

걸어 다니는 테이블 위로 왜가리는 뛰어든다.

테이블은 부서진다.

숲이 출발한다.

왜가리는 하나다.

왜가리는 둘이다.

왜가리는 셋이다.

왜가리는 없다.

왜가리는 숲 속에서 왜가리 놀이를 한다.
의미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하려는 과정 속의 존재물이다. 끊임없이 자기존재를 부정하고 배반하려는 부재의 대상들로 인간의 서정이 도려내진 차가운 오브제들이다. 그러기에 그녀의 시에서 투명한 사물은 끊임없이 불투명해지고 그 불투명해진 사물들은 기존의 의미와 질서와 인과를 무화시킨다. 이때 사물들은 사물 자체의 속성을 상실하므로 대상 없는 언어로 전락하고 기호화된 언어들의 기표놀이가 시작된다.

이수명의 사물 응시와 언어 표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현실에 속한 사물들을 응시하여 언어화하는 방법이다. 현실의 코드 안에 합류된 가시세계의 사물들을 가시세계의 자아가 응시한다. 이때의 사물은 부재와 소멸로 이동 중인 시간의 흐름을 찰나적으로 자른 상태의 사물이고 언어는 쉼 없이 사물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 의미를 무한히 확장한다.

다른 하나는 현실로부터 이탈한 사물들을 응시하여 언어화하는 방법이다. 현실의 코드 안에 합류되지 못한 비가시세계의 사물들을 가시세계의 자아가 응시한다. 이때의 사물은 현실의 논리와 합리적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시간의 변화와 이동, 공간의 굴절과 겹침 등이 자유롭게 일어난다. 시인의 꿈과 무의식이 삼투되어 사물들은 일상의 고정된 위치와 의미를 상실하고 이상하고 충격적인 초현실적 오브제로 변신한다. 사물의 고정된 위치, 획일화된 역할, 단일한 의미가 부정되는데 이것이 독자의 눈에 시니피앙 놀이로 비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시인의 몸 속을 떠돌던 이미지들이 말이 되고 말은 사물보다 선행한다. 말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문장 전체로 퍼져나가고 이 스밈과 운동에 의해 이수명 특유의 형식, 문체, 운율이 태어난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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