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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0.22 14:12:27
  • 최종수정2015.10.22 14:12:27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알았다.

문의향교 담장 뒤편에 텃밭이 있어 문우들이 두 두럭씩 나누어서 고구마를 심었다. 올해는 날씨가 너무 가물었다. 고구마 싹을 심을 때에 물을 주어야 잘 산다는 것을 그날따라 너무 덥고 귀찮아서 그냥 심었더니 시들어 죽는 싹이 많이 생겼다. 보식을 하는 번거로움을 격고 나서야 심을 때 물을 안주고 심은 것을 후회 했다. 농사뿐만 아니라 순리를 역행한 이치를 터득하게 되었다.

한번 시들어진 싹이 다시 소생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순서가 있는 법인데 이를 몰라서 일을 거꾸로 하다 보니 비용도 더 들었고 물을 주는 수고를 더 하게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고생한 보람이 나타난다. 고구마 싹이 제대로 뿌리를 내렸는지 두럭에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기가 쑥쑥 자랐다. 극심한 가뭄을 잘 견뎌내고 뿌리를 내린 어린 싹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이대로 자란다면 올 가을에 고구마를 많이 캘 것 같아 친지들에게 "고구마 사지 말라"고 자랑 섞인 약속을 했다.

얼마 지난 후 고구마 밭에 가보니 황당하게도 고구마 싹이 군데군데 잘려 나가버렸다. 고란이가 왔다 간 모양이다. 울타리를 치지 않고서는 고구마 먹기는 틀렸다는 생각에 망을 사다가 울타리까지 설치하는 유난을 떨었다.

이러다간 고구마 수확량 보다 경비가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울타리를 쳐 놓았으니 이제는 못 들어오겠다 싶어서 안심하고 지내다가 보름 후 가보니 또 난리가 났다. 고구마 밭이 마구 파헤쳐져서 고구마 뿌리가 드러나 하늘을 보고 있다. 이번에는 멧돼지가 왔다간 모양이다.

산 밑에는 고구마 농사가 어렵다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고 고구마를 먹겠다고 심은 것이 후회로 남는다. 이대로 두면 금년에 고구마 먹기는 다 그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주변 분들에게 알아보니 시청에 신고하면 잡아준다고 한다. 곧바로 신고를 하고는 그놈이 잡히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이 후 멧돼지가 고구마 밭을 파헤친 흔적은 더 이상 없었다. 나중에 밭 옆에 사는 분으로 부터 몇 일전 밤중에 뒷산에서 총소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는 그놈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번이나 나타나서 고구마 밭을 파헤쳐 놓은 놈이라서 '그놈 참 잘 죽었다.'고 속으로 뇌까렸다.

고구마 밭이 망가진 다음부터는 정이 떨어져서 자연히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고구마 밭 구경 좀 하러 가자고 해서 오랜만에 찾아갔다. 밭이 온통 바랭이 풀로 뒤덮어 버렸다. 그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고구마 싹이 잡풀과 사투死鬪를 벌이는 모습이 안쓰럽다. 아내와 같이 잡풀을 뽑아줬다. 고구마 싹이 쑥쑥 뻗어 잘 자라나기를 빌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수확의 계절이 돌아왔다. 멧돼지가 다 파헤쳐서 망가져버린 고구마 밭이라 별로 캘 것이 없어 보이지만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에 호미를 들었다.

고생, 고생 끝에 살아남은 고구마라서 더 관심이 간다. 흙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있어 호미가 잘 들어가지 않고 힘만 든다. 호미질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애지중지하던 관심의 발길이 굳은 땅을 더 딱딱하게 다졌나보다. 고구마 캐는 일이 너무 힘들다. 처음 한 포기를 캐어보니 너무 허망하여 그냥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뭄과 멧돼지 수난을 겪으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 같다. 힘들여 캐는 것 보다 차라리 사먹는 편이 낳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두 포기 캐고 나면 다리가 절여오고 아파서 일어서서 있기를 반복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 더 많다. 잔챙이 뿐인 고구마 캐는 일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고구마는 싹만 꾹꾹 심어두면 될 줄 알았다. 농사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것임을 이제서 깨닫게 되었다. 지난여름 땀 흘린 대가를 어디서 찾을거나.

털석 주저앉아 가을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그 속에서 평생을 농사에 몸 바치시던 어머니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인자하신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얘야 힘들지! 그만 해라. 내가 캘 테니….' 학창시절 농사를 거들던 추억이 멀리, 멀리 구름 속으로 밀려가 있다.

△ 류기학 수필가

-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 푸른솔문학 수필가 등단

- 푸른솔문인협회 회장역임

- 수상 : 자랑스런문인상. 정은문학상

- 공저 : <심연에 자리한 이름 > <반딧불> <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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