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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1.28 13:55:08
  • 최종수정2017.11.28 13:55:08
며칠 전 이시종 충북지사가 확대 간부 회의에서 영화 남한산성의 주역 최명길에 대한 역사를 재조명해 보라는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시종 지사는 무슨 이유로 그런 지시를 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최명길이 병자호란 때 나라를 구한 충신이지만 주화파라는 누명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라는 역사부터 더듬어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최명길의 현실적인 외교로 더 많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공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요즘 현실이 청과 명나라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전쟁을 자초했던 상황과 비슷하지 않으냐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린 어떻게든 북핵을 막아야만 살 수 있는데, 미국은 사드를 배치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이에 반대하며 무차별적인 보복을 가하고 있다. 마치 명은 자신을 도와 청을 치라고 하는데, 청은 명나라 말을 들으면 죽인다고 협박하다가 조선을 침략한 것이나 흡사하다.

그때는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어 동족이 상잔하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인조가 무릎을 꿇고 항복한 병자호란은 굴욕이었지만 동족이 상잔하지는 않았으니 지금보다는 형편이 나았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이냐는 문제로 국론이 분열하는 시기에 남한산성 영화가 등장했으니 영화를 보고 난 소감도 정파적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경제적인 관계를 끊고 싶지 않은 것을 최명길의 현실적인 외교와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반면에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끊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해야만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게 바로 보수적인 시각이다. 그럼 우린 어느 길로 가야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게 바로 최명길과 김상헌이다.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이 만고 충신의 대명사라면 주화파인 최명길은 아직도 만고 역적이란 누명을 쓰고 있다. 용감하게 싸워서 적을 물리친 장군이라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일까?

그럴 수 없다면 협상이라도 해서 전쟁을 막아야하는 게 외교다. 그것도 안 되면 굴욕을 참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손자병법에도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역적이란 누명을 쓸 줄 알면서도 오직 백성을 구하기 위해 굴욕을 참았던 용기는 전쟁 영웅 못지않은 것이다.

이런 취지 때문에 최명길의 충절이 비로소 부각되고 있는 게 아닐까?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는 묘소는 웬만한 향토사학자도 모를 정도로 숨겨져 있었다. 설령 알더라도 치욕을 되새기기 싫어서 외면했던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시종 지사가 최명길 행적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시종 지사는 "12월 중에 국회 같은 곳에서 남한산성 작가, 영화감독, 배우, 역사학자, 향토사학자 등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갖고 최명길을 재평가하는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의례적인 지시가 아니라 반드시 실현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충북지사 입장이라면 지역에 있는 묘소 문제를 강조했을 법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특이하다.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무대가 국회 같은 곳이라고 했으니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하고 싶다는 뜻이 있어 보인다.

소설 남한산성을 쓴 작가 김훈, 영화감독 황동혁, 주연배우 이병헌 김윤석 등을 초청할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을 연구한 역사학자까지 포함하라고 했으니 그의 구상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이는 일과성 행사로 끝내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재평가를 받아놓고 지역에 있는 묘소를 어떻게 예우할 것인지도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런 뉴스를 들으면서 승자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만큼 패자의 부끄러움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명길에 대한 재평가는 우리 역사가 승자 중심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각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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