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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5.14 17:30:12
  • 최종수정2019.05.14 17:30:12

최종웅

소설가

대학시절 책 보따리를 싸들고 찾았던 산골의 외딴집을 황혼녘에 다시 찾는 감회는 두 가지다.

우선은 산천이 어떻게 변했느냐는 호기심이다. 그 다음은 젊은 시절 자신의 꿈이 적절했느냐는 반성이다.

만약 그때 그런 꿈을 꾸지 않고 다른 길을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최백수에게 속리산 묘봉은 이렇게 감회가 깊은 곳이다. 지난 5월 6일 40여 년 만에 이런 기분으로 묘봉을 찾았다.

사월 초파일을 일주일 앞두었지만 도무지 사람이 없었다. 등산객은 고사하고 절을 찾는 신자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속리산 상업지역에서 산촌길을 2km쯤 달리면 여적암이란 암자가 나타난다. 이곳이 묘봉을 오르는 초입이다.

국립공원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가 없을 만큼 원시적인 오솔길이 2km쯤 펼쳐진다.

묘봉을 가끔 생각나게 하고, 어떻게든 가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길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오솔길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푹신한 양탄자를 밞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이라는 유행가가 생각나게도 한다.

40여 년 전 쌀 서너 말을 메고 외딴집을 찾던 기억을 회상하며 걷다가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는 고목 하나가 길을 막는 다고 생각하며 스치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 살펴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바짝 다가서며 섬뜩한 놀라움을 느낀다. 어쩜 이렇게 똑같게 생겼느냐며 휴대폰을 꺼내든다.

어떻게 찍어야 이 신비한 모습을 생생히 담을 것이냐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린다.

젊은 여인이 분명하다. 그것도 군살 하나가 없는 팔등신 미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속살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볼 수가 없을 만큼 희고 윤기가 난다. 절세의 미인이 모든 남자들을 다 받아들일 듯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어째서 벌거숭이로 누워있는 걸까· 놀랍기도 하지만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분명 버림을 받은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심정으로 산골짜기를 찾아오다가 기진맥진해서 쓰러진 것이라고 상상한다.

최백수는 자신도 그런 상태라고 한숨을 짓는다. 대학시절 푸른 꿈을 안고 이 골짜기를 찾아와 공부를 했다.

40여 년 만에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모습이 이 여인과 흡사하다고 비유한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생각은 자꾸 벌거숭이 여인목으로 향한다.

한참을 갔는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등산객 몇 명이 그 여인상을 발견하고 놀라는 소리다.

여자는 부끄럽다면서 낙엽을 긁어다가 덮으면 남자는 짓궂게 자꾸 끌어내리는 소리가 분명하다.

최백수는 상상해본다. 자연이 만든 작품이다. 그 신비한 작품이 국립공원의 등산로를 막고 누워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든 취해야 하는 게 아닌가·

모든 사람이 감탄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면 당연히 보존해야 하고, 등산객의 길을 방해할 뿐이라면 속히 치워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인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상으로 향한다.

이상한 건 사람의 키보다도 큰 산죽이 터널을 이루었는데, 그 위세를 찾아볼 수가 없다.

가뭄 탓이라고 짐작하면서도 묘한 상상을 해본다.

여인의 한이 서리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혹시 그 벌거숭이 여인의 한이 산죽을 말라죽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하자 묘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갑자기 사람 소리가 그리워진다.

언제 멧돼지가 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감도 든다.

휴일이면 여기저기 웅성 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등산객이 있었는데 단 한 명도 없다.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등산로가 낙엽에 묻혀 길을 헤맸겠는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두고 외국으로만 나가는 세태를 실감할 수 있는 풍경 아닌가.

지리산 천은사의 문화재 관람료 폐지가 화제가 되듯이 속리산도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관광객의 씨가 마르겠다는 걱정을 하며 최백수는 어둑한 하산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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