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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9.26 11:33:34
  • 최종수정2015.11.05 16:36:40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청주 가게 CEO들의 소소한 이야기.
과장되고 식상한 스토리가 넘쳐나는 정보 과잉시대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를 치유하는 '삶 속의 삶'으로 지역경제의 꽃 소상공인을 정성껏 응원해 본다.
1인칭 진솔·공감·힐링 프로젝트 '마이 리틀 샵' 이번 편은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위치한 와인바 '카사비노'를 운영 중인 이성형 대표의 얘기를 들어본다.

마이리틀샵 - 40. 청주 산남동 '카사비노' 이성형 대표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위치한 와인바 '카사비노'를 운영중인 이성형 대표가 인터뷰에 앞서 가게 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지훈기자
[충북일보] “와인은 추억을 마시는 술이에요. 흐릿한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잖아요, 그래서 대화를 돋게끔 하고. 도수가 낮은 발효주여서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 점들이 건전한 음주문화 형성에 기여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우리 가게는 자정에 문을 닫습니다. 각 1병 이상 팔지 않는 게 원칙이고요. 두 분이 한 병을 드시고 나갈 때 가장 흐뭇해요. 그 정도가 가장 기분이 좋으면서도 쉽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양이니까요.”

“대구로 대학을 가게 됐어요. 타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려 음악다방에 자주 출입하게 됐죠. 그러다 갑자기 다방 주인이 DJ를 하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쓰는 표준어가 그럴싸하다면서요. 사실 경상도 사람들은 충청도 사투리와 표준어를 구분하지 못하거든요. (웃음) 흔쾌히 응했죠. 그렇게 음악감상에 취미를 붙인 게 여기까지 이어진 거고요.”

“당시 청주의 대학생들은 음악다방에 가질 못했어요. 다방엔 어르신들이 많아 담배를 태우면 금방 소문이 났거든요. 누구 아들이 어디서 담배를 피더라 하는. 그래서 본정통 정글제과로 몰렸어요. 그곳은 음악다방처럼 DJ가 있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데다 어르신들이 없어 담배까지 맘껏 피울 수 있었으니까요. 빵집 안에서 흡연한다는 게 지금은 상상치도 못할 일이 됐지만.”

“20년 동안 전산일만 했어요. 전산일이란 게 남들 일하지 않을 때도 일을 해야 해요. 컴퓨터와 관련된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제 몫이었고요. 심지어 천재지변도 제 책임이었죠. 당시 열악한 통신망은 비만 오면 연결이 끊기는 경우가 잦았거든요. 그래도 억울하지 않았어요. 불만도 없었고요. 당시엔 밥만 먹여주면 행복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우리 세대 사람들은 그렇게 일했고, 그렇게 자랐어요. 가끔 동료들끼리 의견 차이로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런 갈등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죠. 다들 고생인 줄 모르고 일하다 보니 동료애가 강해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마치 군 생활이 고된 부대가 오히려 탈영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위치한 와인바 '카사비노'를 운영중인 이성형 대표가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 내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지훈기자
“그래도 0과 1의 싸움. 디지털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음악도 CD가 아닌 LP를 좋아해요.(잠시 후) 아, 이 핸드폰이요? 얼마 전까지 탈옥을 해서 쓰다 요즘은 펌웨어가 업그레이드 되면서 그냥 쓰고 있어요.(웃음) 그래도 제가 필요한 건 해야죠.”

“가게 오픈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 큰 수익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세상일이 나만 열심히 산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으니까요. 더불어 일할 때 생기는 긴장감이 삶을 이끄는 활력소란 걸 알게 됐고요. 정년 후 1년간 쉬는 도중 일이 없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나태하게 하는지 뼈져리게 체험했거든요.”

“아는 게 많지는 않지만, 세상을 좀 더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경험을 얘기해주며 손님들과 대화할 때 행복한 것 같아요. 그러다 분위기가 좋아져 상대에서 한 병을 열면 뭐 저도 한 병 주고.(웃음) 그래서인지 점점 더 많은 사람과 이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져요.”

“언젠가 탔던 택시에서 운전기사가 대뜸 청주사람들이 뒤통수를 잘 친다고 하는 거예요.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난생처음 듣는 얘기라고 대꾸했죠. 그리곤 청주 사람들은 너무 좋다고 따끔하게 일러줬어요. 그러니까 운전사가 대전사람을 청주사람으로 착각한 것 같다며 얼른 말을 고치더라고요. 타지에서 근무한 경우가 많아 청주 출신이라고 얘기할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 열이면 열 청주는 좋은 곳이라고 말했지 나쁜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어요. 물론 양반들이 본심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건 맞아요. 쌀 사러 가면서 쌀 팔러 간다고 하잖아요?”

“아들 같은 여식과 딸 같은 아들 이렇게 두 명의 자녀가 있어요. 이젠 자식들도 어느덧 자라 손주까지 보게 됐죠. 손주를 보고 있으면 아주 귀여워요. 아직 한참 손이 필요로 할 때니까요. 하지만 손주 자체가 예쁜 건 아니에요. 자식이 있으니까 손주인 거지. 그러니까 예쁜 거고.”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들놈을 낳았을 때에요. 큰 여식이 서운해 해도 사실이 그래요. 큰 애가 딸이다 보니 장모님 걱정이 태산 같았죠. 당시엔 시집가서 아들을 못 낳아주면 그걸 문제로 보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집사람 근심도 아주 컸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들놈이 나오니 모든 걱정이 끝난 거죠. 아들을 얻어서 행복했던 게 아니에요. 집안의 걱정이 사라져서 행복했던 거지. 그런데 우리 여식이 남의 집에서 가서 딸만 둘 낳았습니다. 큰일 났습니다.(웃음)”

/김지훈 기자
이 기획물은 업체의 소통과 소셜 브랜딩을 위해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충북일보 페이지(https://www.facebook.com/inews365)에서 영작과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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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