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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그날따라 초여름 햇살이 별처럼 반짝였다. "야 바다다!" 누군가 외쳤다. 바다는 늘 설렘을 준다. 차에서 내렸는데, 바다는 저만치 있고…. 시멘트 둑 너머로 출렁대는 물결로 인하여 가슴이 탔다. 바다는 언제 찾아오든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었지. 오늘처럼 멀면 먼대로 바라만 봐도 충만함을 선사한다. 바다를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 허리높이보다 높은 두툼한 둑에 올라앉았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이 온 몸의 세포를 자극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잠시 시간이 정지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환호성이 터졌다. 고개를 돌리니 그늘 막에서 쉬는 사람들을 관중삼아 한낮에 해변의 무도회가 열렸다. 이때를 위하여 준비라도 한 듯이, 각기 다른 동아리에서 스포츠댄스를 하신다는 점잖으신 은발의 남녀 두 분이 유려하게 미끄러진다. 한 쌍의 새다. 춤사위는 파도를 타는 갈매기요, 형상은 극히 몽환적이다. 고요하게, 가끔은 얼굴이 포개질 것처럼 아찔하게 긴장감을 주면서 사람들의 정서를 압도한다.

어린 시절로 기억이 달려간다. 고향의 약수터 옆에 무도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방갈로라고 불렀다. 방갈로어원은 인도벵골 지방의 독특한 주택양식에서 비롯됐단다. 산기슭이나 호숫가 또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지은, 처마가 깊숙하고 베란다가 있는 곳을 말한다. 풀이나 기와로 지붕을 올린 목조건물로 여름철 피서용으로 쓰인다니 별장의 개념이다. 무도장은 방갈로라고 불릴 조건이 아니었다. 바다나 호수가 보이기는커녕 나지막한 산조차도 없는, 곡식저장 창고처럼 생긴 그곳을 왜 방갈로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암튼 아이들 금지구역으로 규정했던 그곳을 지날 때면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다. 난 홍등이 켜졌던 그 안의 세계가 궁금했었다.

그 후 10년 뒤, 내가 고향에 있는 유치원에 근무할 때였다. 보육교사 세미나에 갔더니 포크댄스를 가르쳐주며 자모회 운영할 때 활용하라고 했다. 나는 꼬마들을 보내고 녹음테이프에 가득 담긴 서양의 각 나라 민속경음악들을 듣곤 했다. 음악들은 어릴 적에 무도장을 지날 때마다 흘러나오던 그 음악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번은 교회 청년모임에 그 포크댄스들을 활용했다. 짝을 이뤄 춤을 추다 한 칸씩 밀려가 짝을 바꾸는 묘미라니, 춤 한번 추고 싶은 이와 짝이 되려면 아직 인데 음악이 끝날까봐 조바심 하는 표정들 이라니, 마음에 둔 이와 만나기 직전에서 하필 음악이 끝나버리다니…. 40여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빠져들고야 마는 그 음악, 몇 트랙을 돌아도 끝나고 나면 "아이!" 하는 아쉬움의 합창이 일제히 터지곤 했다.

이튿날, 나는 교회 안에서 풍기문란을 조장助長한 사탄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목사님께 불려가 혼쭐이 났다. 그 후 그 시간을 찬양으로 대체했더니 다시 그 춤을 추자고 청년들의 원성이 컸던 추억이 있다. 4박자나 3박자 왈츠지만 마지막엔 남녀가 부둥켜안고 호흡을 쉬며 천상을 거닐 듯 도니 방갈로 무희와 다를 게 없는 것을, 피 끓는 청년들에게 전수하다니…. 철모르고 반짝이던 그 시절 열정이 그립다.

해변의 춤은 이어진다. 중력과 관성의 법칙처럼 밀고 당겼다 끊어질듯 잇는 것이 원을 그리듯 모나지 않는다. 저 분들은 아는 사이일까· 춤 한번 추자는데 너무 심오할 필요는 없겠다. 지금의 감정을 오롯이 몸으로 표현할 뿐, 일상으로 가면 모르는 사이여도 좋으리. 그저 자유롭게 이 순간을 즐기면 된다. 음악도 없이, 약속도 없이, 악보라곤 관중이 보내는 음표 없는 손뼉리듬 뿐이다. 그럼에도 호흡을 맞추며 하늘하늘 날렵하게 동작들을 구현하니, 오늘 이 해변에 춤신神들이 임했나 보다.

두 분 사이에 흐르는 일정한 리듬을 들으며, 리듬의 기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리듬, 그 기원은 어디일까. 공허와 혼돈뿐이던 태초부터 존재했고, 심장박동을 듣는데서 부터 해와 달의 움직임까지 온통 리듬 속에서 살다 간다. 그렇게 온 우주가 리듬으로 가득하듯,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리듬이 있거늘…. 저처럼만 유연하게 맞추며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몸으로 환희를 말하는 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춤처럼 사람을 매혹시키는 예술도 드물게다. 해변 춤신神들의 몸짓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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