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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2.04 17:27:39
  • 최종수정2021.02.04 17:27:39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소설 중 이 문장을 그날 되뇌고 있었다. 책을 덮고도 악마 '험버트' 눈빛을 얼른 떨쳐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실체, 또 다른 롤리타 하나쯤 나도 가지고 살기에 성범죄자요 살인자인 험버트에게 연민을 느끼며 선뜻 그를 정죄하지 못하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롤리타》는 소아성애小兒性愛를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많은 논란과 함께 롤리타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뉴욕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주인공 험버트는 어린 의붓딸 롤리타에게 강한 성욕을 느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인생을 허비한다. 그렇게 음울하게 이어지면서 여러 비극을 낳고 마친다.

그리고 그날, 정서를 환기하는 기사도 읽었다. 내용은 이랬다. 경기도 광주 버스정류장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스리랑카 청년이 있었다. 돈을 벌려고 왔으나 실상은 입에 풀칠만 근근이 하던 중, 고용주 횡포가 너무 심하여 불만을 토로했다가 쫓겨난 거다. 기막힌 상황을 만난 그에게 한 목사님이 다가갔다. 목사님은 그를 데려가 보살피고 임금 체불과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해주고 새 일자리를 구해주었다.

따뜻한 심장과 인간애를 가진 그분에게 감동했다. 우리 사회에 험버트만 있는 게 아닌, 헤세가 창조한《싯다르타》도 있다는 게 고마웠다. 아름다운 영혼과 고매한 사상을 가진 싯다르타에 대하여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모하여 발아래 조아리고 앉아 말씀을 들었듯, 그 목사님 설교 한번 듣고 싶었다.

미담은 이어진다. 몇 년 후, 그 청년 삼촌이 스리랑카 대통령이 됐다. 그의 삼촌은 한국에 대한 고마움의 답례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코끼리 한 쌍을 보내왔다. 존경받는 스리랑카 역대 왕 부부 이름을 딴 '가자바'와 '수겔라'는 잘 적응하여 새끼를 낳았다. 그 나라 대통령의 우호적 시각이 외국인 투자 규모 2위라는 국익 창출도 가져왔으니, 스리랑카에서 코끼리가 온 이유는 그 이상의 의미가 된 거다. 험버트 우울에서 벗어나 바닷새가 떼를 지어 오르는 청량함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며칠 뒤 그 목사가 중국인 여성을 성추행하여 고발당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런 반전이! 노회에 사실을 인정했고 파직당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찝찝한 기분이라니…. 하지만 이내 그를 향한 마음이 눅져지면서 선뜻 손가락질 못 하고 머뭇거렸다. 그래, 선과 악은 함께 있고 천국과 지옥은 동전 앞뒷면처럼 가까이 있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은 동정이지, 이성 간에 동정심은 위험하지…. 사랑만큼 인간을 사로잡는 강렬한 감정도 없기에, 동정과 연정처럼 가까운 것도 없기에, 그 청년을 도와주었듯 이주여성을 아껴주다가 일어난 사고일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그를 변호했다. 다른 마음이 일어섰다. 같은 여자이면서 그를 이해하려 하다니, 네가 타국에서 외로워 본 적이 있니·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가슴에서 머리까지라고 했잖아, 간음한 여자에게 예수님도 돌을 던지지 않으셨잖니· 그는 춥고 외로운 이들을 보살폈는데 너는 헐벗고 의지할 데 없는 이에게 선을 베풀지 않았잖아, 사람이니까 실수한 거야, 그렇게 다투다 이해하는 쪽이 이겼다.

이유는 인정해서다. 책임지고 치욕을 감당해서다. 죽고 싶었을 것이나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죽지 않는 건 죽는 것보다 큰 용기다. 뉘우치고 책임지는 이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많지 않다. 비悲라는 말처럼 포용적인 말도 없으리. 그 말은 안쓰러워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비悲라는 말을 대비하면, 세상에 이해 못 할 일도 없다. 죄와 사람이 따로 보이며 초라한 사람에게 연민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담도 죄를 짓고 드러났을 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껴 나뭇잎으로 하체를 가렸다. 하나님께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어도 죽음을 택하진 않았다. 죽지 않고 치욕을 감당했다. 그런 아담을 긍휼히 여겨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 실낙원失樂園한 건 비극이지만, 에덴동산 시절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 큰 비극이다. 아담은 다시 시작했다. 놀고먹던 시절을 잊고 땀 흘려 일했다.

내 안에도 롤리타가 있다. 욕망, 시기, 질투, 이름들도 다양하다. 그것들은 걸음을 뗄 때마다 혀끝에서 입천장을 지나와 앞니를 툭툭 건드리며 충동질한다. 그렇게 나의 약점을 수시로 노린다. 지그시 눌러 놓으면 가지런한 침묵 속에 평온을 유지하다가도 맑은 물 아래 가만히 있다가도 뾰족 돌이 되어 꿈틀댄다. 그러다 수면 위로 불쑥 떠오른다. 나는 돌출한 그것들로 인해 놀라서 구토하며 모멸감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롤리타에서 싯다르타까지다. 내 속에도 롤리타만 있는 건 아니다. 싯다르타도 있다. 그런데 원하지 않는 롤리타에게 더 끌려다니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포기할 수 없는 롤리타여, 원치 않는 롤리타여 내가 원하는 싯다르타여…. 롤리타를 잡으려고 수없이 허공을 휘젓다 내리는 해쓱한 빈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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