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시골집에서 손수건에 둘둘 말아 놓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하면서 펼치노라니 한 뼘쯤 되는 칼이 툭 떨어진다. 손잡이에 빨강 파랑 노랑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다. 화려한 은빛에 삼색 태극문양이 황금비율로 어우러져 노리개를 방불케 한다. 그런데 칼을 빼보았더니 날카로운 칼끝이 장난이 아니다. 어머님께 칼에 대하여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적막한 집에서 혼자 지내실 때 그 칼이 의지가 되더라고 말씀하신다. 한 뼘 칼이 의지가 되셨단다. 질곡한 세월에 마냥 사람 좋은 아버님을 만나 자식을 여덟이나 낳아 기르자니 여장부로 사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한 뼘 칼이 의지가 되셨단다. 아버님 장례를 마치던 날, 혼자 어찌 사시겠냐면서 우리 집으로 가시자고 했더니, 60년 넘게 산 내 집을 두고 어디로 가느냐고 하시더니…. 어머님은 정말 험한 상황이라도 만나게 되면 이 칼을 사용하실 생각이셨을까….

여성 인권이 저 바닥에 있을 때, 남성 우월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던 시절에 일부 여성들이 은장도를 소장했었다. 과부들이 정조를 빼앗겼을 때 자결하기 위해 품고 있었던 거다. 멀리 부여시대에는 여자가 간통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었고, 멀지 않은 조선조에는 여성들 본능을 억압하는 게 극에 달하여 열녀 출현은 가문의 영광이고 마을의 자랑으로 여겼다. 과부가 되면 남편을 따라 자살해 주기를 가문에서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하여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여인을 미망인未亡人 이라 부르며 목숨 부지하는 것을 스스로 죄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풍토를 조성했다.

혼돈과 광란의 무채색 영상 한편이 40년 전 일을 되돌린다. 삼류 영화에나 있을 법한 무질서하고 심히 위태위태한 상황이 그날 밤 내 앞에서 벌어졌다. 유리 조각 같은 별빛이 제멋대로 구불거리는 한적한 시골 길옆의 밭두렁에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별들이 한꺼번에 통째로 떨어졌으면 했다. 아니 그중 하나만이라도 냉큼 떨어져 기막힌 이 상황을 박살 내 버렸으면 했다. 하지만 휘영청 달까지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전도사님은 자신이 대신 매를 맞겠다고 했고, 시골 동네 불한당들은 나와 직장동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달빛 아래 한 남자가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졌다. 우리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초죽음이 되어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농촌 벽지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었고, 강사로 갔었다. 변변한 놀이 시설이 없던 시절인지라 어린이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낮에 풍금에 맞추어 율동과 노래를 가르치고 동화를 할 때,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낯선 청년들과 눈이 마주쳤으나 이 상황을 예견하지는 못했다. 신혼에 만삭인 사모님께 부담을 더 주더라도 자고 밝을 때 가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다. 자가용은커녕 택시도 없던 시절이었다. 전도사님은 짐 자전거로 우리를 태우러 오셨던 것처럼, 그렇게 자전거 뒤에 둘이 태우고 왕복 두 시간 거리 밤길을 나섰던 거다.

순결이 생명이라고 가르치신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그날 내가 험한 일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치욕감으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불한당에게 당하는 건 교통사고로 팔다리 부러지는 거나 같은 것을, 죽음을 생각했었다. 검은 산마루에 걸쳐 내려다보던 달이 더는 못 보겠는지 구름 한 자락을 가져와 제 얼굴을 가렸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김샜다 가자." 그 말을 듣고 불한당들이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사라졌지만 가다 말고 다시 와서 달려들지도 몰라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사람의 사고처럼 단단한 것도 없을 거다.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나는 내 딸에게 친정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성교육을 했다. 순결은 남편 될 사람을 위해 목숨처럼 여겨야 하느니라 하고 가르쳤다. 사고의 변화처럼 천천히 흐르는 시계도 없을 거다. "너는 조선 남성들이 자행한 범죄의 상징이야, 남성들만의 이기심의 발로에서 나온 극한 인권 말살 문화의 산물이야." 나는 어머니 은장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김한영 국가철도공단 이사장

[충북일보] 10대 시절 친척집에서 청주고를 다녔다. 1986년 행정고시(30회)에 합격했고, 국토교통부에서 철도·항공관련 전문가로 화려한 공직생활을 보냈다. 그는 미래 녹색교통 수단 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철도와 관련해 세계적으로도 손 꼽히는 전문가로 지난 2월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에 부임했다. 김한영(64) 이사장을 만나 충북관련 철도인프라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이사장에 취임하신 소감은 "공직의 대부분을 교통과 물류분야에서 보냈다. 1987년 교통 분야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90년대 초에 철도담당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철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철도정책과장과 교통정책실장, 공항철도㈜ 사장 등 10년 넘게 철도업무를 하면서 철도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다. 그동안 철도구조 개혁과 수서고속철도 경쟁체제 도입, 1차 철도망구축계획 및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수립 등 철도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노력해 왔다. 철도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다소 높아졌으나, 높아진 위상에 비해 미래 준비는 다소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2월에 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전 직원과 함께 제2의 철도 부흥기를 만들기 위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올해 주요 개통 철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