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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10.06 14:08:00
  • 최종수정2022.10.06 14:08:00

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사과를 먹을 때면 풍금 소리가 들린다.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세레나데다. 달콤한 사과즙이 입안 가득 번지면서 사각사각 과질을 흥건히 즐길 때쯤이면, 귓전 너머로 풍금 연주 소리가 들린다. '머나먼 저곳 스와니강물 그리워라~♬' 사과 궤짝을 짊어진 한 남자가 음악 속에서 걸어 나온다. 전설 같은 그날, 나는 유치원에서 힘차게 페달을 구르고 있었다. 그때 사과 궤짝을 메고 그가 들어왔다. 40년 세월이 흘렀어도 사과를 먹으려면 여지없이 들리는 풍금 소리요, 확연히 그려지는 형상이다.

그날 나는 근무 중이었고, 유치원 꼬마들은 자유 놀이시간이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모으려면 "어린이들~그만 놀고 교실로 들어오세요~" 하고 소리 질러서는 성대가 당해내지 못했다. 음향시설이 없던지라 생음악을 들려주었다. 아이들과는 음악 약속이 있었다. 자유 놀이하다 멈추고 모이는 음악, 간식 먹으려고 손 씻는 음악, 하원 준비 음악 등 모두 달랐다. 나는 풍금을 연주했고 아이들은 다른 선생님을 따라 음악 소리를 듣고 척척 진행했다. 그날도 '스와니강'을 연주하고 있었다. 울려 퍼지는 풍금 소리에 아이들은 노는 걸 멈추고 참새떼들처럼 모여들었다.

그때, 모여드는 아이들 사이로 궤짝을 짊어진 그가 뚜벅뚜벅 왔다. 처음에는 환상인가 했다. 그는 고향에 다니러 갔었고, 내일 온다고 했다. 그러니 그 사람 일리가 없다. 지나치게 그에게 몰입해 있다 보니 환상이 보였나 했다. 겨우 이틀 그가 없는데, 내 고향 부강이 텅 비었었지. 늦가을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새 한 마리도 날아오르지 않았었지…. 그런데 그가 일정을 하루 당겨서 온 거다. 부모님이 농사지으신 거라면서 붉고 튼실한 사과 궤짝을 내려놓더니 "맘껏 먹어요." 하고 말했다.

당시 나의 고향에는 과수원을 하는 집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라면서 사과를 맘껏 먹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집만이 아니고 사과를 궤짝으로 들여놓고 먹는 집이 없었다. 사과를 맛볼 수 있는 날은 큰집에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큰어머니는 차례를 지낸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목기에 부침개와 떡을 썰어 똑 고르게 얹고 배와 사과는 여덟 쪽을 내어 맨 위에 올려서 올망졸망 둘러앉은 우리에게 주었다. 새콤달콤 신비한 사과 맛이 부침개나 떡을 제치고 내게는 단연 최고였다.

그가 고향에 다니러 가기 전날 청혼을 해왔었다. 마음은 그로 가득했으나 여러 생각으로 선뜻 답을 못한 채 그를 보내고는 텅 빈 고향하늘을 느끼며 고민 중이었다. 나무 사과 궤짝은 두 개였다. 두 상자씩이나 어떻게 가져왔냐고 묻자 그는 차를 갈아타고 온 이야기를 했다. 먼저 아버지께서 지게에 지고 추평리까지 오리길을 내려오셨단다. 추평리에서 버스를 타고 엄정을 거쳐 충주 버스터미널까지 왔단다. 터미널에서 택시로 충주역까지 왔고, 역에서 충북선 기차를 타고 조치원까지 와서 경부선 기차로 갈아탔단다. 그리고 부강에 내려서 어깨에 메고 온 것이다. 중간중간 차들이 바로 연결이 안 돼서 기다렸다 타다 보니 집에서 새벽에 나왔다고 했다.

세상에 과일이 많으나 사과처럼 인류를 움직여온 과일도 없을 거다. 이브를 유혹한 에덴동산 사과는 원초적이던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한적한 들길을 걸으며 사색하던 '뉴턴'에게 띈 사과는 '만유인력 법칙' 기초이론을 창출해 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폴 세잔'의 사과도 있었다. 그는 정확한 묘사를 위해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데, 수백 개 사과를 그리고 그리면서 고뇌한 결과, 전통적인 회화 관습이 깨지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획기적인 일을 이루어냈다고 전한다.

그날 수백 리를 달려온 사과는 내 우주를 지배해 버렸다. 마음을 정하자 세상은 초장으로 변했고 나는 매일 풀밭에서 노는 사슴이었다. 밤마다 별이 무더기로 내렸다. 해도 달도 꿈을 꾸니, 하늘이 구름이 나무가 심지어 잡풀까지도 예뻤다. 의지할 수 있는 똑똑한 낙타 한 마리만 있다면 사막도 좋다고 했던가. 나야말로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풍금 소리 나는 사과면 족했다. 풍금 소리와 함께 내 혼과 세포에 스며든 사과는 세월이 흘러도 먹을 때마다 풍금 소리를 들려준다. "여보, 사과에서 풍금 소리가 나요." "무슨 말이야?" "나만 들을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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