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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살다 보면, 고독한 새 한 마리가 내 마음에 낳은 알을 하나씩 가져가 버린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고도 그는 내 주변을 서성이면서 떠나지 않아 자신의 존재를 감지하게 한다. 그는 삼킬 것을 두루 찾는 독수리처럼 내 머리 위를 빙빙 돈다. 날개 없는 고독 새는 공허라는 뿌연 연기를 만들어내면서 내 삶을 에워싸 마침내 혼돈의 지경까지 이르게 한다. 형체는 안 보이나 분명히 존재하는 고독한 새 한 마리….

그런가 하면 서리 까마귀가 할퀴고 간 것처럼 가슴이 쓰릴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적, 고독 새와는 달리 이런 경우는 상대방 형체가 드러난다. 문제는 변명도 대항도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여기저기서 화살만 날아온다는 거다. 혀로 쏘아대는 말 화살촉에 급기야 나는 평정을 잃고 분노로 휘청거린다. 주기적 불청객이려니 하고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이 못마땅하여 자존감마저 무너져내린다. 이런 일은 한 번 몸속에 들어오면 고칠 수 없는 병처럼 끈질기게 반복되곤 한다.

반복된다는 건 좋은 점도 있다. 반복하니 지피지기할 수 있고, 그것이 승리로 종결되는 병법이 되기도 해서다. 해보나마나한 병법은 이렇다. 참고 참다 고립무원으로 몰릴 때쯤이면 박차고 일어나 나간다. 보이지 않는 적이나 보이는 적이나 운명 앞에 서 있다. 그 운명을 등지지 않는 한, 운명은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인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뇐다. 눈을 부릅뜨고 그것들을 바라본다. 고독 새는 무엇이며, 나를 흔드는 자 누구냐, 한 번 해보자! 하고 맞짱 뜨노라면 못줄 넘어가듯이 지나간다.

광야를 벗어나 노회한 기사처럼 말고삐를 쥐고 달린다. 급기야 혼돈이 정돈된다. 어느새 들판은 초록으로 물들었다. 소들은 어슬렁거리고 저녁 새는 노래한다. 도도히 흐르는 고향의 강물에 어린 노을빛과 정을 나누는 누각을 만나 올라간다. 그리고 생각의 돌들을 하나씩 톺아본다. 그러노라면 나를 드리웠던 그림자가 점점 분홍빛으로 변하면서 에워싼다. 분노가 긍휼로 바뀌니 상대방을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실체 모호한 고독 새 따위는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 얼룩일 뿐이었다.

지나고 보면 그것들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균형 잡아 놓기 위한 것들이었다. 복음성가 '은혜'를 불러본다. 노랫말처럼 내 삶의 모든 것은 은혜였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거저 받은 것들이었다. 은혜 복기에 들어간다. 자상한 남편 건강하고, 주말이면 토끼 같은 손주들이 몰려와 내 뺨을 비벼댄다. 커피나무 한 그루 심지 않았음에도 매일 커피를 내리며 향을 즐기고, 쿠키 한 조각 만드는 수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 향에 쿠키를 적시며 여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땀 흘려 돈 버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서 철 따라 옷을 사고 여행을 하고 취미활동을 하면서 살지 않던가….

모든 것이 은혜였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을 일으키는 시를 쓸 수 있을까.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은혜였소….' 그런데 나는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시인의 말처럼 아침 해가 뜨고 지금 노을을 볼 수 있는 것도 은혜인 것을, 당연한 줄 알았다.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도 당연한 게 아니라 은혜였다.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해가 내린다. 저녁 강은 고요하다. 강물에 비친 산 그림자를 음산하다 할 수도 있고, 둔중한 울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는 것도 매한가지다. 어찌 말랑거리는 삶만 있겠나. 마음먹기 따라 칸타빌레 음악처럼 살 수도 있고, 돌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듯 살 수도 있다. 노래하듯 살리라. 천 가지 영혼을 가진 풍경처럼 살리라. 지난날들을 그리워하듯, 지금을 그리워할 때가 올 것이다. 돌아가자. 세상이 나를 조롱해도 돌아갈 집이 있고, 인정해주며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인가. 오늘은 남편이 즐기는,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어 콩나물국을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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