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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7.01 17:25:40
  • 최종수정2021.07.01 17:25:40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따당∼땅, 따당∼땅, 피아노 조율을 한다. 흩어지는 맥놀이들을 잡아 현들을 표준음에 맞춘다. 엇박자로 두들겨 생기는 맥놀이들에 기억 저편에 있는 아련한 노래들이 겹쳐진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르시던 엇박자 가락들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몸이 아픈 날 선명하게 들리던 노래들이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던 소리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어머니 손바닥처럼 뻣뻣하고 거칠거칠한 피아노 현들을 쓰다듬어본다. 현이 파르르 떤다. 두들겨 맞고 맞아서 우는 현, 이리저리 뒤엉킨 어머니 심사를 닮았다. 존재한다는 건 맞고 조이는 고통인 거라고 어른다. 세상과 불협화음으로 밖으로 도시던 아버지, 윙윙 우는 현처럼 울음을 삭이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명共鳴의 세월, 어머니의 시간은 엇박자 세월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성근 무릎뼈에 가만히 스며든 통증을 끌어안고 꼭꼭 주무르셨다. 잘바∼닥, 잘바∼닥, 아픈 다리를 끌고 일어나 새벽을 여는 어머니 걸음걸이 소리, 좋은 의술 한번 못 써보고 엇박자로 걸으셨던 어머니…. 어릴 적에 밭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갈 때면 후르∼쫑 후르∼쫑 이산 저산서 새들이 울어댔다.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며 뽕잎을 따셨고, 나는 입언저리가 거무스름하도록 오디를 따먹었다. 새들 노래도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도 모두 엇박자였다. 어린 나의 장래를 축복하는 가사를 실어 노래를 부르실 때는 마치 성수가 머리에 뿌려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 노래들은 서로 합쳐졌다 다시 흘러가는 강줄기 같았다.

어머니 삶은 온통 엇박자였다. 배고픈 이를 먹여주고 재워주면 쓸 만한 물건을 가지고 사라졌고, 푼푼이 모은 돈은 계주에게 뜯겼다. 그렇게 한 박자 늦게 세상을 따라가면서도 사람을 원망하는 대신 자식들의 복을 빌면서 기다림의 소망을 엇박자 가락에 노래로 싣곤 하셨다. 노래를 부르면서 밭을 매면 길고 긴 여름날 밭고랑이 어느새 지나더라고 말씀하셨다. 장에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실 때도 아이를 업고 노래를 부르셨단다. 어머니는 노래로 마음을 다스리는 묘리를 터득하셨나 보다.

어머니는 악보를 모르셨다. 콩나물 음표 꼬리 옆에 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음길이가 변한다는 이론 같은 건 모르셨다. 그것이 오선의 줄에 있는지 칸에 있는지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규칙을 모르고 한세상을 사셨다. 어머니는 발성법이나 악기도 모르셨다. 그저 목청 자체가 악기였고 노랫말은 만들어 부르셨다. 같은 노래라도 어느 사람이 부르면 비장미悲壯美가 느껴지고 어느 사람이 부르면 온유미溫柔美가 느껴지는 법, 어머니의 노래들은 회한이 서린 조금은 슬프게 이어지는 엇박자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개인이 가진 사상이 뿌리라면 노래는 꽃이라고 할까. 뿌리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꽃을 피워내듯이, 사람들은 각양각색 노래들을 토하면서 산다. 어머니가 부르시던 엇박자 노래들은 생각의 뿌리에, 인내라는 자양분을 주어 감정을 다스리고 피워내는 언어였고, 삶을 표현하는 꽃이었다. 어머니 노래는 장엄한 미사곡처럼 다듬어지진 아니했었다. 그러나 마음을 닦는 의식이었고, 그리움을 풀어내고 괴로움을 달래어 소망을 부르는 통로였다.

오선지에 어머니 노래 들을 따라가며 음표를 그린다. 약간 슬프게 넘는 단조 가락에 조금 느린 8분의 6 엇박자다. 음표들이 모여 동기와 악절을 이룬다. 곡조에 노랫말들을 실어 불러본다. 따아∼띠, 따아∼띠, 엇박자 가락을 건반에 얹고 손가락에 맡기니 어깨가 절로 들썩거린다. 멜로디가 건반 위에서 포물선을 그리듯, 너울너울 날갯짓하는 새무리처럼 파도를 탄다. 후르∼쫑, 후르∼쫑, 잘바∼닥, 잘바∼.

엇박자 가락들이 시공을 넘어 어머니와 나를 하나로 묶는다. 환희! 엇박자 노래들을 악보로 찾은 느낌은 환희다. 산다는 것은 찹찹 맞아 돌아가는 비바체나 감미로운 삼박자왈츠가 아니다. 세상과 일치한 박자를 맞추는 곳에 가치를 두어보았을 때, 그것들은 끝내 이루어낼 수 없는 인내를 가장한 신기루 같은 거였다. 체념하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비바체나 왈츠 호흡을 추구할수록 상흔과 균열만 남곤 했다. 산다는 건 비루하지도 그다지 고풍스럽지도 않은 엇박자다. 발품을 팔면서 한 박자 늦게 철 지난 옷을 찾아다니며 고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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