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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가. 바다가 거꾸로 매달리어 지구로 엎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비의 굵기나 형태에 따라 보슬보슬 이니 가랑가랑 이니 다양한 이름들을 붙여서 부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릴 때 표현하는 말이다. 며칠 전 승용차 안에서 한참 구경한 비는 보슬보슬 가랑가랑은 비슷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주룩주룩 좍좍 쏴아! 란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폭포수처럼 직수로 쏟고 쏟아 붓는 이 빗소리를 무슨 언어로 표현할까. 소리를 자각하는 달팽이관이 감각을 잃었는지 빗소리가 하도 커서인지 그 소리를 표현할 언어를 찾을 순 없었다. 그저 적요할 뿐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건만 도저히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꼼짝없이 차안에 갇혀 비 구경을 했다. 몇 날을 벼르더니만 당당하게도 쳐들어와 물줄기를 수직으로 내리꽂는 비, 큰비는 모두 데려간다. 바람도 데려가고 한참 쏟을 때는 구름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 흔한 새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구죽주한 습도마저 데려가 상쾌하기까지 하다. 물처럼 유(柔)하게 살라 했던가. 그러나 성난 물결은 거친 수마(水魔)로 변하기도 한다. 물을 가리켜 부드럽고 유하다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둑을 넘어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그리곤 건물을 무너뜨리고 사람목숨을 갈취해 가기도 했는데 그래도 성이 안차는지 강을 지나 바다까지 들썩거린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차 유리로 철철 흐르는 빗물에 그리움하나 얹으니 꽃봉투 따라온 미지의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던 내젊은 날 몸짓들이 떠오른다. 편지교환만으로도 설레며 내속에 생장했던 그 감정을 첫사랑이라 했다. 그런데 얼굴한번 못보고 보낸 후 돛대 잃은 배처럼 한동안 표랑했었다. 젊음 하나만으로도 봄 산처럼 푸른 물이 뿜어져 나와야 하건만, 당시 내 삶의 행간(行間)엔 짙은 그레이빛 만이 감돌았었다. 나름 웃을 일이 아주 없기야 했겠나마는 단연 사랑하는 일이 가장 아름답지 않던가. 그날도 내 마음엔 작은 난로하나 없는, 쓸쓸한 빈집 같이 적막했다.

종일 재잘거리던 유치원 어린이들이 엄마 품으로 모두 돌아가고 나자 우울함이 습관처럼 다시 찾아왔었다. 하루의 일상을 소박한 행복으로 여기며 서로 나누는 직원들의 대화조차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졌다. 청소를 마치고 책상을 정리하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금강 변으로 나가 걸어 다녔다. 하늘만이 내편인양 잔뜩 찌푸리고 구름을 낮게 드리웠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원심력과 꼬마들 속에 섞여 살아야한다는 구심력이 그날따라 내안에서 강하게 충돌했었다.

그때였다. 두두둑 두두둑 군병들이 떼 지어 달리는 말발굽소리가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몇 번 정도 들렸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하늘에서 지금처럼 물을 토하기 시작했는데 가히 땅을 삼킬 듯 했었다. 비라는 것이 통념은 피아니시모로 시작하여 강한 포르테로 변하건만 그날은 순서 따윈 무시하고 오늘처럼 직수로 떨어지는 폭포수 같았다. '비야! 비야! 더 세게 때려다오….' 그날 강변을 걸으면서 뼛속까지 스미도록 흠씬 맞은 비가 음습하고 눅눅하게 시들어가는 영혼을 몸 밖으로 불러내어 위무했었다. 사람으로 인해 아픈 마음을 흠뻑 적시는 비가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런데, 사랑만큼 아름다움 꿈이 어디 있느냐며 첫사랑안부가 궁금해질 만큼 담담해진 지금,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꽃 진 자리마다 열매를 매다는 푸나무만도 못한 푸석한 정서로 빗물에 튈 옷을 염려한다. 오늘처럼 큰비가 내리는 날엔 금강으로 가던 그때가 그립다. 결핍의 정서를 음악처럼 애잔하게 흐르는 비를 맞고 걸으며 위로 받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이라도 용기 내어 비 한번 흠씬 맞으며 걸어나 볼까나? 혹시 아는가. 발산하는 그때의 생동감을 되찾을 수 있을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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