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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감동이 내 집으로 내려왔다. 햇살과 바람이 나무를 쓰다듬고 농부의 땀이 익힌 결과물들이 황홀하다. 하나, 둘, 셋,…. 네모반듯한 복숭아상자 속에 그분 마음 열 알이 가지런히 서려있다. 모자람 없는 완전수 '열'이로고…. 꽉 찬 마음이 전하여 온다고 의미까지 부여하며 행복을 배로 충전한다. 이름도 고운 '햇사레복숭아' 열 알 중 한 개를 씻었다. 껍데기도 아까워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삐져 접시에 담았다. 감사기도를 하고 포크로 찍어 입에 넣으니 입 안 가득 달달한 과즙이 흥건히 도랑을 이룬다. 입속에서 식감미각들 전쟁이 터졌다. 오감만족 세포들이 일제히 일어서 달콤한 복숭아속살을 음미한다. 그 맛에 취하여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말랑거리는 식감이 온 미각을 일으켜 세운다. 천도를 걷는 듯 천천히 순간을 즐기면서 먹었다.

세상에 과일나무가 많지만 복숭아나무처럼 정신을 빼앗는 과일나무도 드물 거다. 매혹적인 분홍빛을 터뜨려 길가에 차를 세우게 하던 봄날부터 범상치 않다. 한 나무가 분홍하양색을 섞어 꽃을 피워내기도 하여 신비함을 주는 나무도 있다. 숫처녀의 뺨을 닮은 아리따운 꽃망울들은 정서를 깨워 꿈을 꾸게 한다. 달빛이 부서지는 밤 복사꽃 너울지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좋은 사람과 거닐어 보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만약에 그런 날이 온다면 '복사꽃아래 서면 오래된 혼백과 이야기 하는 수가 있다….' 고 노래한 옛 시인의 시 한수를 저절로 읊조리지 않을 수 없으리. '이런 절정의 표현을 하다니….' 하며 초극 언어의 조탁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으리.

감미로운 복숭아를 먹으면서 보내주신 그분께 나는 무엇을 주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받기만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주는 것에는 형체가 있는 것이 있고 무형체인 것들이 있다. 사라지는 물질보다는 마음을 중요시하며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물질을 건네는 것은 가는 맘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면서 물질 나누는 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마음을 주는 것이 쉬울까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을 주는 것이 쉬울까. 우리는 처음 만나는 이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이나 동정의 마음은 고민하지 않고 나눠주면서 물질 주는 일은 고민한다. 가령 구걸하는 이에게 얼마나 춥고 배가 고프냐면서 동정의 마음은 선뜻 보내지만, 정작 물질을 얼마간이나마 나눠주는 일은 쉽게 실행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다.

크고 작음을 떠나 물질을 나눔에 있어 고민하는 건 물질이 나 중심으로 운용되어져서이다. 그런 의미에선 마음을 주는 일이 물질을 주는 것보다 쉬운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음만이라 해서 쉽게 주진 않는다. 산을 한 삽씩 떠서 바다를 메우는 일은 가능하나 닫힌 한줌 사람 마음은 절대 열지 못하잖은가. 경우에 따라서 물질은 억지로라도 얼마간 줄 수 있으나 마음은 절대 주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차라리 물질은 나눌 수 있으나 마음을 주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

마음만 주고받으며 정을 유지하기도 한다지만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면 더욱 정이 깊어질 수 있다. 받는 것보다 주는 일에 익숙한 나임에도 복숭아 선물을 받고 감동한다. 그것은 물질에 녹아 흐르는 마음이 느껴져서이다. 내 집으로 온 복숭아들로 인하여 요즘 행복하다. 그분의 숨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 할 알씩 아껴먹고 있다. 선물의 계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고마운 분들에게 무슨 선물로 마음을 표현할까. 의례적인 의무 같은 것이 아닌, 나의 마음과 함께 가므로 인하여 상대방이 나처럼 감동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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