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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병원은 늘 북적인다.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접수를 한 뒤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순간 흠칫했다. 얼굴을 하얗게 덮어버린 마스크 위로 두 눈만 반짝이는 사람들이 의자에 빼곡히 앉아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거다. 아니 접수창구 위에 있는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나 역시 눈만 내놓고 다니는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면서 흠칫할 건 뭔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귀신같은 코로나19가 세상을 장악한 지도 10개월이 넘었으니, 새로운 문화풍토에 적응할 만도 하건만 아직 인가 보다. 생각해보면 눈과 귀를 내놓고 다닐 수 있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외출할 때 눈과 귀까지 가리고 다녀야만 한다면 세상은 어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전광판 대기자 명단에 아는 이름이 지나간다. 동명일 수도 있지 하면서도 둘러보게 된다. 그런데 두 눈만 반짝이는 대기자들 모습이 한결같아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어서서 움직인다면 걸음걸이나 키, 앞태 뒤태로 알아보겠으나 앉아들 있으니 구별할 수가 없다. 그 귀신이 인간들에게 마스크를 씌워놓은 바람에 공평한 것도 있다.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지식인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가 없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누구도 그놈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꿈속에서조차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만 코로나 귀신이 창궐한 현실을 어떻게 즐긴단 말인가. 고통이 사람을 키운다지만 고통을 누가 좋아하겠나. 늙어가는 몸을 받아들이며 무릎이 아파 치료받으러 온 상황에, 촘촘히 시간을 쓰며 동동거리다 산더미 같은 일들로 머리가 복잡한데, 하릴없이 기다려야 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즐기란 말인가.

옆자리 여인을 힐금 보았다. 즐기지는 못할지라도 노느니 염불한다고 이 여인 관찰이나 해봐야겠다. 도심에서 사는 여인일까, 자연에서 텃밭을 일구며 유유자적하는 여인일까. 얼굴을 보면 나이를 어느 정도 감 잡을 수 있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머리를 물들이고 운동으로 몸매를 유지하고 옷을 젊게 입어도 인상에서 오는 나이가 있는데 눈빛만으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마스크로 늘어진 눈주머니까지 절묘하게 가리고 있는 데다, 나이가 들어도 눈빛이 살아 번득이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눈빛이 친근한 이 여인에게 몇 살쯤 줄까. 그때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하며 밖으로 간다. 목소리 톤이 높고 맑다. 통원피스로 허리 라인을 감추고 다리를 감추어서 아리송하긴 하지만 넉넉하게 40대 후반쯤 주자. 친근한 눈빛과 조화를 이루고 있을 마스크 속에 있는 미지의 얼굴을 상상해보았다. 이 여성 들어오더니 음수대를 향하여 걸어간다. 마스크를 벗더니 납작하게 접어 쌓아놓은 종이컵을 펴서 물을 두어 번 마시고 돌아선다. 얼굴을 보았다. 들린다! 상상탑 무너지는 소리가….

상상했던 얼굴과 너무 다르다. 턱선과 입가의 주름들로 보아 후하게 쳐도 60대 후반은 족히 된 여성이다. 코와 입 모양이 사람 인상을 이렇게 변화시키다니 신기하다. 세상에 신기한 일이 많지만 사람 얼굴을 볼 때마다 신기함을 느낀다. 작은 공간에 이목구비 네 가지만 배치했는데, 75억인 얼굴이 다 다르잖은가. 빼어난 솜씨를 가진 조각가에게 얼굴을 각기 다르게 빚어보라면 몇 명 정도나 다르게 빚을까.

"저 문디, 높은 자리 앉아 입만 열믄 사고치고 말임더, 아이 그러심까?" 숨죽이고 혼자 떠드는 벽걸이 TV를 보던 한 남성이 말을 걸어온다. 경상도 말하는 이 남성에겐 몇 살 줄까. 충청도 남자는 가늠하기가 쉽다. 말투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품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경상도 남성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한때는 경상도 남자가 신비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더구나 눈빛과 음성만으로 경상도 남자 나이를 상상하는 건 빗나간 옆자리 여성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크므로 그만둔다.

전광판에 내 이름은 아직 이다. 눈을 감는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이제까지 내 그리움은 특별한 일들로 먼 곳에 있었다. 별을 동경하여 무지개를 쫓아가며 달리던 고향 들판, 첫사랑,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친정어머니, 아들을 안고 젖을 먹이던 청춘의 날들…. 그런데 요즘 내 그리움들은 가까이 있다. 사람들과 찻집에 있던 일, 찬양하면서 예배드리던 일,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서서 뷔페를 즐기던 일….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이다. "임미옥님 들어오세요!" 드디어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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