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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내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 아들 집으로 가서 손자 목욕을 시킨다. 어떻게 이 조그만 몸 안에 영혼과 생각이 들어 있을까. "아유! 누굴 닮아 요렇게 예쁜 모습을 하고 세상에 오셨나요?"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가 몸이 손끝에 닿는 이 느낌, 뭉클함 같은 그 무엇…. 나의 피가 아들을 지나서 작은 몸으로 이어져 흐르는 천륜….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이목구비와 표정이 아들이 도로 아기가 됐나 착각할 정도이다.

목욕을 시킨 뒤 제 어미가 젖을 물린다. 스르르 잠이든 모습, 천사다. 천사를 내려다보자니 좌충우돌했던 새댁시절이 떠오른다.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언지 모르고 나는 결혼했고, 스물다섯에 첫아들을 낳았다. 긴 산통 끝에 꼼지락거리는 아가를 안았을 때, 기쁘다는 감정을 넘어 너무한 소중함이었고, 소중함이 지나쳐 조심스러움이었다. 그 조심스러움이 지나치니 두려움에 가까운 심정이었다. 점차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그리되기까지 살얼음판을 걷듯 했다.

제일 어려운 게 목욕시키는 거였다. 아가를 조금만 세게 잡았다간 부러져버릴 것만 같고, 살짝 안자니 물에 빠트리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 말랑한 정수리(앞숫구멍)부분을 만지면 큰일 날 것 같아 조심조심 헹구어 주곤 했다. 그러기를 며칠 지나서였다. 아기 머리 가운데 논바닥이 갈라지듯 덕지덕지 뭔가 덮여있는 게 아닌가. 행여 머리에 손상이 갈까 봐 살살 헹구었더니 때가 딱지를 이루며 덮은 것이다.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 참기름을 발라 밤새 두었다. "아가야,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이튿날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머리를 거꾸로 빗질하여 떼면서 중얼거렸다. 좌충우돌 중에도 신기한 건 내 몸의 순간 자동 반응이다. 내 가슴에 그렇게 깊은 샘이 있을 줄이야. 아기를 생각만 해도 가슴에 찌르르 물길이 돌며 사랑은 무한정 솟구쳤다. 사랑도 넘치면 아프다. 주체할 수 없어 유축기로 짜내는 건 고통이었다. 그러나 아기가 가슴을 파고들어 나하고 일치되는 순간 환희로 바뀌곤 했다.

아기 목욕시키는 시간은 기도시간이었다. 머리를 감기면서 지혜와 지식이 가득 차기를 기도했고, 가슴을 씻어주면서 민족을 품는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라 했다. 성기관을 씻어주면서, 이담에 이 거룩한 성기관을 통해 거룩한 후손을 만들라고 기도했다. 손과 발을 씻어주면서, 이 손과 발로 많은 사람을 먹이고 거둬 살리기를 기도했고, 엉덩이를 씻어주면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자리에 앉기를 기도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사춘기를 지날 무렵부터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고시를 목표하라 종용했고, 아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아들 머릿속을 씻길 기세로 몰아댔다. 그랬더니 내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여 고시를 목표로 전공을 택했다. 그리고 졸업 후 신림동 고시촌에 씨앗을 심었다. 내친김에 신도 포기할 것 같은 고시 광야로 내몰았다. 아들은 같은 우물 속을 종일 오르내리는 두레박처럼 좁고 지루한 한 평짜리 방에서 쓴잔을 세 번이나 마시며 시간을 감내하였다. 사막에서 땅을 파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목욕시킬 때처럼 열심히 기도했다. 그런데 끝내 그 땅에서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부모님 기대에 부담으로 사는 거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세 번째 낙방하더니 며느릿감을 데려와 이렇게 말했다.

그랬다. 수천 번 씻겼지만 나는 아들의 겉만 씻겼다. 마음이나 정신은 씻길 수 없는 것을, 머릿속까지 씻기려고 노력을 많이도 했다. 돌이켜보면 목욕을 시키면서 수없이 했던 기도의 내용도 나의 욕심이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한 인격체에게 장기간 정신적 부담을 주었다. 갓 태어난 아기 때부터 이런저런 사람이 되라고 목욕시킬 때마다 가한 부담 횟수가 수천 번이 넘는다. 이 정도면 범죄 수준이다.

손자를 씻기면서는 이런저런 사람이 되라 주문하며 기도하지 않는다. 새근새근 자는 아가 숨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아들이 들어온다. 외출복을 벗자마자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많이도 씻겨주었건만 아들은 아직도 목욕 중이다. "이번에 제가 추진한 큰 건이 미국FDA를 통과했어요." 한참 만에 나온 아들이 머리를 털며 말한다. 그래 아들아, 산다는 건 끝없이 목욕을 반복하는 것과 같은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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