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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7.06 17:23:31
  • 최종수정2023.07.06 17:23:31

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게슴츠레한 눈으로 관광버스 블라인드를 올렸다. 드디어 단양이다. 사람인가… 나무인가… 버섯인가…. 단정하게 전지(剪枝)를 하면서 키운 가로수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다가오는가 하면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절도 있는 모습들이 제복을 잘 갖추어 입은 근위병들을 닮아서 사람인가 하면 나무이고, 커다란 버섯인가 하면 나무다. 다시 보니 전아한 수형(樹形)들이 초록우산을 펼쳐 들고 있는 형상이다. 저 가로수들 퍽 인상적이다. 나그네를 향해 정중히 도열하는 가로수들 이름이 궁금하다.

'복자기 나무'다. 잘 정돈된 도시적인 모습들과 달리 순박한 촌사람 이름이라 흥미롭다. 복자기 나무는 가을이 되면 붉게 단풍이 들어 맘껏 가을 정취를 뽐낸다. 하지만 화려하기가 단풍나무만은 못하다. 단단하게 몸을 만들어가면서 큰 재목이 되는 꿈을 꾸기도 하나 박달나무만은 못하다. 하여 '나도 박달나무'라고도 부른다.

'상제보다 복재기가 더 슬피 운다.'는 옛말이 있다. 일을 당한 사람보다 주변 사람이 더 슬퍼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이 속담이 떠올려짐은 가로수와 이름이 같아서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 왕실이나 사대부들 장례에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가 있었다. 슬픔이 아무리 깊어도 눈물은 마르고 울음도 한계에 이른다. 이때 주변에서 대기하다 나서서 곡을 이어가 온 동네를 다시 눈물바다로 만드는 이가 있다. 이런 사람을 복인, 또는 복자기라 했다. 복재기는 복자기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뿐 아니라 단풍도 재질도 주인공이 못 되고 아류인 것도 같구나.

다음이란 말처럼 씁쓸한 말도 없을 거다. 목전까지 차오른 고독을 쟁반처럼 맘껏 부풀려도 달이 해가 될 수 없듯, 용을 써도 주인공이 아닌 그 쓸쓸함이라니…. 초상집에 곡성이 끊이지 않도록 울어주며 곡비로 사는 건 허허벌판에서 만난 무너진 성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일이다. 그런 일은, 도자기 목선을 따라 흐르는 유약의 흘림처럼, 저녁 햇살에 미끄러지는 설움이다. 다음은 기다림이기도 하다. 돌도 기왓장도 자기 말을 먼저 하는데 복재기는 주인공을 앞질러 나서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

눈을 감는다. 슬픔에 빠진 한 마을이 보인다. 한낱 복자기가 한 일이다. 손뼉이 쳐진다. 단풍도 단단함도 최고가 아니고, 지식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복자기가, 용을 써도 신분을 바꿀 수 없는 복자기가 온 동네를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탁월한 능력 아닌가. 제 설움이든 남의 슬픔이든 진심이 아니면 어찌 울까. 남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잇다니, 인정이 넘친다. 이거야말로 복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박달나무나 단풍나무가 끼어들 수 없는, 복자기가 만든 복자기 주인공 세상이다.

그러면 뭐하나 복자기인걸. 목이 쉬게 울어도 상제가 아닌 복자기로 살 뿐일 것을. 그런데 단양 가로수들이 복자기를 탈출했다. 단양 명물의 둘째가 아닌, 단양 주인공으로 랜드마크가 되어 전국에서 사람을 모은다. 심은 대로 두었다면 복자기로 머물러 있었을 거다. 그런데 단양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최고가 되게 가꾸었다. 전지를 해가며 수형을 우산형으로 다보록하게 키워 감동을 준다. 자연과 인간이 이룬 쾌거다. 전지 당하는 연금鍊金 과정을 거쳤기에 사람들 정서 공간을 점유하는가 보다. 하늘까지 뻗는 꿈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견디고 감성의 통증을 앓으며 분신을 끊어내는 아픔이 있었기에 오늘 주인공으로 거듭나 보기 좋다 칭송 듣는가 보다.

나는 다듬지 않은 복자기다. 잘라내지 못한 무성한 잔가지들을 끌어안고 세상이란 숲 가운데 있다. 뽐낼 것을 흔들면 광채는 다른 곳을 향한다. 지친 상제 대신 울었건만 내 슬픔을 기댈 곳은 없다. 내 모습은 달콤한 사과가 열리어 축제가 열리는 날 물러나 구경하는 올빼미다. 가슴은 밥상에서 바삐 움직이나 반찬 맛을 모르는 젓가락이다. 영혼은 아담으로부터 받은 슬픈 유산처럼 회색빛이다. 나는 두 자매 중 가장 좋은 것 하나를 택하여 칭찬받은 영특한 마리아가 아닌, 열두 폭 오지랖을 펄럭이며 일을 하다가 그 하나를 놓쳐 예수께 책망 들은 미련한 '마르다'다.

잔도(棧道)를 걷는다. 복자기 가로수가 말을 걸어온다. '내면의 우물을 들여다보시라….' '너그러우신 정원사여! 나를 만져 주오. 잔가지들을 잘라내 그 다보록함에 흠씬 빠지도록 다듬어 주오.' 신이 흘린 눈물, 초록 강물에 마음을 담금질한다. 그렇지, 나의 오지랖으로 세상이 명랑하다면 그게 다보록함이지…. 남의 슬픔을 잇대 울어서 사람을 모으면 그게 다보록한 은사지…. 최고가 아닌 다음인 내 모습이 내 삶의 주인공이고 나의 특색이었구나. 내 것이 아닌 허상을 보며 목말라 했구나. 복자기 귀환을 축하하며 잔을 든다. 광채가 쏟아진다. 내 삶의 주인공인 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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