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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영혼의 우울함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 그런 날이 있다. 신자라면 항상 기뻐해야 하건만 기쁘지 않다. 그런 날은 하늘의 해마저 검은 천을 드리운 상복처럼 느껴지고, 밤빛 같은 그림자가 가슴을 어둡게 한다. 그런 날은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영혼의 허허로움을 느낀다. 이 불청한 손님은 혼을 음부의 나락 같은 곳으로 한없이 끌고 내려가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감성의 갑갑함을 느끼는 날도 있다. 가슴을 음산하게 물들이며 감동을 잃게 하여 아무 사색도 할 수 없다. 반짝이며 톡톡 튀는 언어나 문장은커녕 컴퓨터에 앉아 있으나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든 그런 날에도 반드시 이것만은 하리라고 정해 놓고 행하는 나만의 규례가 있다. 정서가 고갈되어 도무지 글이 안 되는 갑갑한 날은 쓰는 일을 중단하고 책을 읽는다. 영혼이 침체된 날도 주일예배 수요예배는 참석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히 아픈 날도 성경 한두 장을 읽거나 요절 몇 구절정도는 암송한다. 그 정도 일을 기본규례라 하는 건, 억지로라도 그 일은 실행할 수 있어서이다. 언젠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이 온다 해도 의식의 끈이 실낱 같이 남아있기만 하다면 실제로 요절 한 두절정도는 암송하면서 가고 싶다.

그런가하면 영혼도 감성도 아닌 육신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온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눈알이 빠질 듯 하고 고열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날 실행하는 규례는 다름 아닌 '가만히 쉬자' 이다. 그렇게 쉬운 일을 규례라고?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나로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규례로 정해 놓고 억지로라도 실행한다. 하루쯤 핸드폰을 재워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그러므로 체면과 책임감으로 여기저기 팽이처럼 돌아치던 일상을 올 스톱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임박한 원고마감 등 당장 해야 할 일을 덮어두고 무조건 쉰다는 것은 모험처럼 어려운 일이다.

교회봉사에 적극 협조해 달라 회원들에게 독려하곤 정작 내가 불참하면 회장으로서 얼마나 기막힐 일인가. 이번 달 친구들과 점심약속은 오늘 하자고 내가 주장하지 않았던가. 매일 가서 뵙자고 가까운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모셔오고선 겨우 6개월 만에 하루를 건너뛰게 되다니…. 그 외에 몇 가지 더 번잡한 일들이 있다. 전 같으면 축 처진 몸을 끌고 다니며 펑크 내지 않고 기웃거리곤 앓아눕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리하지 않는다. 다 덮어 놓고 죽은 듯 가만히 누워서 쉬어준다.

나에게는 규례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습관도 하나 있다. 식욕이 없는 날은 '입맛 없으면 물 말아 먹어라.' 하시던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고추장하나 놓고 밥에 물을 부어버린다. 예전에 어머니께서는 장독대에서 되직하게 굳은 고동색고추장을 손가락에 푹 찍어오셨다. 그리곤 찬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넘기시곤 손가락한번 빨고 하는 일을 천천히 반복하셨다. 입맛 없을 때 구태여 입맛 돋우려 산해진미를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먹으면 체할 수 있다. 일도 마찬가지, 지나치게 힘든 날은 많은 일을 하려 않고 기본만 하는 거다. 그리고 회복되기를 가만히 기다려주는 거다.

다시 일어나 토끼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글을 써댈 수 있는 것도, 다시 힘내어 찬송하며 매일 새벽기도회에 오가는 것도, 여전히 세상이 나아니면 안돌아 간다는 듯 열정을 다해 돌아치는 것도, 나만의 규례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싶다. 죽을 만큼 힘들 때는 기본만 하자. 그리하면 회복되어 더 많이 더 잘하는 날이 온다. 그러나 기본조차 놓아 버리면 회복이 되어도 감각을 잃어버려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창하지 않아도 나만의 규례를 지키다 보면 규례가 습관이 되고 생활화된다. 그리하면, 규례는 내가 세웠어도 그 작은 규례들이 나를 잡아주는 기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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